그냥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냥’의 뜻을 아래 두 가지로 풀이했다.
(1) 그 모양 그대로.  “그냥 두어라.”
(2) 그대로 줄곧.  “그냥 잠만 잔다.”
   하나 더 보태야 하지 않을까?
(3) 별 뜻 없이.

 

 

   별 뜻 없이!
   가친께서 환도 후에 400여명이 모이는 교회를 맡으셨으니 당시로는 대교회--대형 교회는 아니고--이었는데, 살기는 무척 어려웠다.  육 남매 공부시키노라 선자(先慈)께서 이런저런 일을 하셨다.  뭘 시작해서 좀 되려고 하면, 아버님은 자존심 때문인지 한 마디 하신다.  “은혜가 안 되게...”  그러면 눈가에 이슬 맺히고, 끝낼 수밖에.
   어머니께서 현대극장(마포구 아현동 소재) 초입의 다리 위에서 편물점을 내셨을 적 얘기.  반 평 하꼬방에서 난로 없이 한겨울을 나며 뜨개질을 하셨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곳으로 갔다.     
   어머니의 인사: “왜 왔니?”
   (아니, 왜라니?  무슨 인사가 그래...) “그냥~요.”
   “그냥은... 엄마 보고 싶어 왔지?” 
   (알면서 왜 물으실까.)  “네, 뭐...”
   좀 있으면 그러신다.  “숙제해야지?  금방 갈 테니 먼저 들어가라.”
   그러면서 이십‘환’을 주시면, “돈은 필요 없는데...” 하면서 받는다.  꿀꿀이죽 한 그릇 값.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이라고 하지만, 별 뜻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그냥’이 많다.  우리는 그냥...
 


   다른 ‘그냥’도 있다.
(4) 셈할 필요 없이.   “그냥 가져가.”  “그냥 잊어버려.”
   아이들이 오용하는 것이겠는데, 보통 ‘걍'이라고 발음한다.
(5) 볼 것 없이, 앞 뒤 가릴 것 없이.  “걍 쎈타 놓고 튀는 거야.”


 

   빗소리가 자못 크다.  우음(雨音)이 우음(羽音)으로, 다음에 우음(偶吟)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우음(偶吟)은 ‘그냥 읊어본 시’인데, 그렇다고 ‘무제’랄 수도 없고, ‘별 뜻 없는’ 서정시는 아니다. 
 
   송한필(宋翰弼)은 그의 형 익필과 함께 알려진 학자, 문장가였는데, 이이(李珥)를 지지한다 하여 사림파가 몰아 천민으로 떨어트렸다.  그의 우음시 한 수.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어제밤 비에 피었던 꽃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가련하다 한 봄의 일이 (그냥!)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비바람에 오고 가는구나

 

   남명(南冥) 조식(曹植)의 ‘우음’도 잘 알려졌지만, 그것까지야...  오늘은 그냥...   

 

 

   윤두서(尹斗緖)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를 보탠다.  그냥.
'그냥'은 아니고, '그냥'의 의미를 잘 설명하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