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즈음 2

 

 

좋은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슬픈데 왜 웃음이 입가에 걸리는 걸까

길 가며 삐죽거리는 면상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누가 따라붙었다.

-아저씨 혼자야?

-보다시피. 그런데 왜?

-왜는... 나도 혼잔데 같이 가자는 거지.

-각자 페이스대로 걷고, 갈 데까지 가다가 사이 벌어지면 떨어지는 줄 알고.

{그렇지 뭐, 다짐할 것도 아니네. 좋으면 오래 가겠고.

가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난 뭐지?” 하며 떨어져나가면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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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확률이 많지만, 실패했어도 안한 것보다는 낫지

그리고 실패도 나름 성공이라는 둘러댐이 밉지 않거든.

그렇게 살며 사랑하며.

 

사랑하면서 벗어나는 길 없을까?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자유로운 게 아니고 말이지.

 

우리말처럼 집중해듣지 않아도 쏙쏙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l'amour와 la mort 구별 못하겠더라.

 

 

가버릴 것, 더 좋은 게 온다 해도

안됐어, 안타깝고.

어둑새벽,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햇귀가 돌격할 즈음

지겹던 어둠 패주할 때에 붙잡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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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을 찾아온 羅山處士가 귀양살이 중인 사람이 정원을 가꾸고 꽃을 심고 약초를 거둠을 두고

뭐라고 그랬다. “삶이라는 게 떠다니는 것이거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거하게 나온 건 아니고

“맞습니다요, 허지만...”으로 나온 얘기가 ‘浮菴記’, 옮긴이는 ‘뜬세상의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떠다니다 서로 만나면 기뻐하고 떠다니다 서로 헤어지면 시원스레 잊어버리면 그만일 뿐입니다.

무어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떠다니는 것은 전혀 슬픈 일이 아닙니다.

어부는 떠다니면서 먹을 것을 얻고 상인은 떠다니면서 이익을 얻습니다.

 

옳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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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회혼례를 앞둔, 그러니까 亡日 엿새 전(1836년 2월 16일)에 쓴 絶筆이랄만한 편지에서 그랬다.

“죽는다는 것은 아침에 생겼다가 없어지는 버섯처럼 덧없는 것입니다...”

 

그게 뭐야? 말짱 헛것?

그것이... 다산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나 그래도 이룬 게 있으니까

파우스트 박사도 평생 학문을 넓히고 파고 조이고 닦으며 窮究했으니까

애씀의 덧없음을 吐露할 자격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4.19도 나기 전에, 보자, 소매가 허옇던-그때는 감기를 달고 살고, 흐르는 코를 닦아야 했기에- 시절에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를 잘 아는 노래의 후렴처럼 흥얼거렸다.

 

{그때는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오” 허사가 아니라도

찬송가 가사라고 “이 세상의 소망 구름 같고 부귀와 영화도 한 꿈일세”

“뜬세상(浮世)의 손(客) 노릇도 잠시 동안뿐일세”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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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살이든 流浪의 삶이든 잠깐이라도 쉬는 자리가 定處 아닌가?

허니까 陋屋이라도, 뭐 그마저 없으면 맨땅에 자리 깔면 되니까

琴棋書畵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불러다가

살구꽃이 처음 피면, 또 복숭아꽃이 피면, 한여름에 과일 익으면, 서늘해질 때 연꽃 구경을 위해,

아 국화가 피었을 때도, 겨울철 큰 눈 내리면, 歲暮에 盆梅가 피면...

핑계 댈 게 없으면 그냥 보고 싶으니까 만나는 모임, 竹蘭詩社 같은 것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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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날, 날 날, 살 날, 죽어가는 날, 사랑하는 날

이바돔 차렸으니 오시게.

젓가락 두 번 가는 건 알천으로 기억해두고 올 때마다 준비해두지.

 

 

‘The Lost Chord’ played by Virgil 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