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진리의 무거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는 무게를 참지 못한다.
머리만 해도 견디기 어려운데, 무슨 짐을 더 지란 말인가.
산 사람은 안아줘도 업어줘도 가볍기만 하더라.
시체는 정말 무거워.
자유케 하는 진리는 살아있는 말씀.
교조가 되면 죽은 것.
여기서 잠시 자막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조심하라.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죽게 하거나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리가 아니겠는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중에서--
명주솜 이불, 양털솜 이불이 있다지만, 그게 무슨 솜? 목화로만 솜이불을 만든다.
수공에 비해 수지가 맞지 않으니, 누가 이 시대에 목화를 재배하고 무명 길쌈을 하겠느뇨.
한국뿐만 아니고 여기도 그렇다. 달라스에서 텍사카나로 올라가는 길옆이 온통 목화밭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Harry Belafonte의 목소리로 알려진 ‘Cotton field'라는 노래도 있지 않았는가. 이젠 뭐,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이다.
아내는 무거운 이불을 덮어야 잠이 오고, 나는 차렵이불의 무게도 감당하지 못한다.
(잠버릇이 다르면 말년이 괴롭다.)
그 날 어머님과 나는 이불을 들고 솜틀집으로 갔다. 쪽팔리게...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모른다.
찾아올 때는 어머님 홀로 가셨다.
혼자 지신 어머님 품에 나는 목을 묻었다.
웃자고.
설교자는 미간에 내 川자를, 듣는 이는 이마에 석 三자를 그어야 공감대 형성?
갑옷만 있으면 이기냐? 골리앗은 무게 때문에 기동력이 떨어져서 당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