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 둔 성인
교황의 가심.
그 통과제례는 아마도 인류가 볼 수 있는 마지막 (인위적) ‘장엄’이 아닐는지?
일년 전쯤 먼저 가신 구상 시인이 생각난다. 그때 스크랩해둔 것을 다시 편다.
드디어 떠나셨구나.
드디어? 오래 고생하셨고, 예상했던 일이라는 뜻.
신학교와 분도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도망친 일도 있었다지.
날마다 신의 장례식을 치러도 살아나는,
그가 극복하려고 무던히 애썼던 대상으로부터 무척이나 고임 받았던 분이다.
거부하는 몸짓에도 불구하고 順命한 분이니까.
나는 카톨릭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개신교와의 대결 구도나 신학적 이유라기 보다는 그 ‘전체주의’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연결된 줄들이 있지만. 전공, 은사, 친구, 애인, 후원자 등. 아, 뭐 개신교라고 해서 내게 기쁨을 주는 건 아니다. 그 무지막지한 성상파괴라니...)
그런데, ‘문화/문학/?’... 그런 쪽으로 보자면 가히 열등감이라고 할 만큼 창피한 생각이 든다.
인구로는 개신교 쪽이 세 배 이상 될 터인데, 우뚝 선 봉오리로 치자면, 글쎄...
(물론, ‘일기장’에서나 낼 수 있는 소리. 가만, 여기가 어디지...)
젊은 때에 현실 비판 등에 발 담근 적이 있지만--그때 그러지 않는 애들은 못된 놈--,
그는 처음부터 수도자가 아니었던가.
이름 앞에 '聖(St.)' 자를 붙이는 사람들보다 나는 구상 같은 이를 좋아한다.
그 자신은 별로 꾸미지 않는데도, 그는 綺語를 죄라 하며 부끄러워하였다.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綺語(기어)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아무렴, 나이 들면 그래야지, 그 같아야지.
태풍일과후(颱風一過後)랄까!
지난 세월, 고되고 괴롭고 쓰라리고
안쓰럽고 부끄럽고 뉘우쳐지는
삶의 고비와 갖가지 사연들이
그야말로 비바람 자듯 개이고
엄두도 못 낼 평화와 안식 속에 있다.
이윽고 저 장밋빛 황혼처럼
나의 이승의 노을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마저도, 이 저녁엔
소년 적 해질 무렵이면 찾으시던
어머니의 그 부름, 그 모습처럼
두렵기는커녕 도리어 기다려진다.
--‘어느 비개인 석양’--
아파트 뜰 안 옆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가 호젓이 켜져 있다.
오가는 행인도 별로 없고
달도 별도 없는 이 밤
그 짙노랑 불빛은
희뿌연 램프를 통해 비춰서
더 없이 은은하다
나의 이제 남은 삶이나 시도
저 가로등처럼 어두운 우리 삶의
어느 한구석이나마 밝히고 싶다.
--‘어느 골목 가로등’--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건 윤동주가 젊었기에 할 수 있는 염원이었고.
이만큼 살았으면 부끄럼뿐.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못다한 일 많아 부끄럽네
아버지 사랑이 날 용납하시고
생명의 면류관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