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꽃자리라고 하면 두 가지를 가리킨다.
(1) ‘꽃이 떨어지고 남은 자국’을 원예, 과수에서는 중요하게 다룬다.
아래 두 시는 그런 의미의 꽃자리.
촉촉히 비 내리던 봄날
부드러운 그대 입술에
처음 내 입술이 떨며 닿던
그날 그 꽃자리
글썽이듯 글썽이듯
꽃잎은 지고
그 상처 위에 다시 돋는 봄
그날 그 꽃자리
그날 그 아픈 꽃자리
(정희성의 ‘꽃자리’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문태준의 ‘꽃 진 자리’에서)
(2) ‘꽃 (돗)자리’, 그러니까, 떨어진 꽃잎이 쌓여 화문석 같은 자리가 된 것.
김소월의 ‘봄비’를 듣자.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 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닯이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미당의 “저기 저 꽃자리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도 그런 것이겠고.
구상의 시로 가장 잘 알려진 것 중의 하나...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 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라는 말은 ‘靑銅’ 다방에 죽치고 앉은 空超(오상순)가
그를 보러 온 사람들을 만날 때에 쓰던 말이다. 구상도 한 동아리이었겠고.
Marilyn Monroe(1949)
네 앉은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자리가 꽃자리”라는 말은 아이들이 잠자리를 잡을 때에 정신을 혼미케 하려고 꼬드기는 노래말이었다.
(잠자리가 알아듣겠는지... 들었다고 속을는지...)
잠자라 잠자라 앉으면 살고 날면 죽고
천리 밖에 가면 네 목숨이 뚝
멀리가면 죽는다 앉은자리 꽃자리
(3) 요즘엔 ‘별자리’처럼 ‘꽃점’치는데 생일별로 ‘꽃자리’를 따지기도 한다고. 그야 내 알 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