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피었는데
한국 떠나온 지 달포가 지났나, 블로그마다 꽃소식을 전하고 있다.
산수유 지나간지 오래 되었고, 지금쯤 목련도 흩어지고 있을 것이다. 벚꽃도 졌겠고, 개나리, 진달래 가고 나면 철쭉, 라일락이 들어서고, 다음엔 모란, 아카시아, 장미, 뭐 그렇게 줄 설 것이고.
아냐... 이젠 서열 파괴랄까, ‘추월’이 문제되지 않는다나. 맛보기, 전채, 샐러드, 앙트레, 디저트, 그런 순서로 나올 것도 없고, 본래 한식은 한 상에 다 차려 내오기는 하지만...
꽃이 순서대로 피지 않는다는 게 여간 섭섭하지 않다.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살구꽃과 벚꽃이 비슷하긴 한데,
살구꽃엔 분홍빛을 개칠한 듯 싶던가,
고향 떠나 삼십 여년이라 근접거리에서 본지가 오래 됐고,
그냥 느낌으로 말하자면,
살구꽃은 한복 색깔, 벚꽃은 기모노 바탕으로 어울리고,
벚꽃 숲에선 정종을, 살구꽃 나무 아래서는 동동주를 들어야
시가 줄줄.
(흠~ 나는 그런 짓 한 적 없음! 이규보에게 물어보시오, 정말인지 아닌지.)
보통 우물가에 살구나무가 있거든.
정지에 물동이 내려놓고 보면 꽃잎이 떠있는 거라.
井臼之役(물긷고 절구질하는 일들)에 고달픈 아낙의 마음이 싱숭생숭.
아래는 려말/ 선초 문인이었던 권근의 시 ‘春日城南卽事’이다.
春風忽已近淸明 봄바람 문득 부니 청명이 가까웠나
細雨霏霏晩未晴 보슬비 촉촉 내려 저물도록 개지 않네
屋角杏花開欲遍 집모퉁이 살구꽃 활짝 터지려하여
數枝含露向人傾 두어 가지 이슬 머금고 사람 쪽으로 기울었네
이호우는 그랬지.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려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여기 살구꽃이 피긴 했는데,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며
누굴 부르기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