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감포 앞바다
초사흘, 그러니 이틀이나 지나고서 할 말은 아니지만, 해맞이!
해돋이를 구경하는 게 해맞이이겠으나, 어느 날에 해가 안 뜬 적 있나?
그러니까 새로 한 해를 맞이하는 일이라는 뜻이겠네.
{迎年, 그 옛날 외설로 피소된 적 있는 박승훈의 ‘零年’이 아니고.}
맞이하다와 맞다?
‘맞이하다’는 다가오는 것을 예의로 맞아들이는 능동적인 일
‘맞다’는 수동적으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그러니까 위기가 닥친다든지, 눈, 비, 바람 따위를 겪는다든지, 외부의 타격이 몸에 전달되는
그런 뜻의 자동사이기도 하지만
‘맞이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타동사이기도 한데
난 ‘맞이하다’보다는 ‘맞다’라는 말을 쓰고 싶거든.
위당 정인보 선생의 ‘새해의 노래’ 노랫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일까 ?일까?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불러오는 것도 아닐 테고...
그야 진취적 기상, 선구자적 자세, 근면, 협력... 뭐 그런 것들을 고취하자는.
그걸 시비하자는 건 아닌데
내 삶의 덩어리 혹은 궤적을 살펴보니 ‘내가 한 일’보다는 ‘내게 일어난 일’이 더 많지 않았는가
나뿐만 아니고 다른 이들도 그러지-혹은 그렇지- 않았겠나?
그렇다고 환경의 굴레에 저항하고 극복하자는 일깨움이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 그 ‘새해의 노래’ 말이지요...
온 겨레 정성덩이 해 돼 오르니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 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서 겨울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을 맘껏 펼쳐 보리라.
{그런데, ‘4대 국경일’인가 하던, 날은 있는데 뜻은 사라진...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노래가 다 그분 작품이네?}
은퇴 첫 해 엄벙덤벙 어영부영 낭비했는데
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그건 아니지.
해서 ‘희망’이라는 주머니 꺼내어 먼지 털긴 했는데...
뭘 집어넣지?
예전에 육교에서 펼치고 팔던 접이식 쪽거울
한 쪽에는 거울 밑에 ‘希望’, 다른 쪽에는 여우 사진
그래서 들여다보면 芝美와 내가 나란히 웃는, 그게 희망?
죽을 때 희망이 끝난다.
살아있는 동안 희망은 지속한다.
희망이 당신보다 먼저 사라지면? 살아도 산 것 아니네.
당신이 지금 살아있는 건 뭘 바라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기 때문.
딱히 뭔지 모르겠다고? 규정지으면 그게 살 이유.
허니까, “이러고도 살아야합니까?” 그러지 말고
“어떻게 이제까지 살아왔지?” 쪽으로 생각해보게.
{어제 살 이유가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사라진 건 아니겠네.
없어졌다? 그런 게 아니고, 더 기다려야 할 것이네. 그게 더 살아야 될 이유.}
바람(願)은 바람(風) 같아서 뭘 남기지 않고 그냥 가버릴 때가 많지만
오기는 왔고 와서 달라진 게 있으니까
잡지 못했어도 가버린 뒤를 향하여 고맙다 인사해야 될 거야.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앞으로도 놓지 않아야 할 바람.
참고로... {그 잘난 척하는 버릇, 쩝.}
‘바래다’는 배웅하다, 바라보며 보내준다는 뜻, 送人
{徐令壽閣이 ‘送人’이라는 좋은 시를 남겼지.
送客蒼山暮 歸來白雲臥 古壁有鳴琴 松風時自過}
‘바라다’는 마음속으로 기대한다는 뜻,
그러니까 바람(風)과 혼동될까 해서 ‘바램’으로 쓰는 건 잘못.
바람 얘길 해선가, 위풍 있을 집도 아닌데 웬 바람소리?
바람이 소리를 만들었다고
그래서 바람소리?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바람은 뒤집어쓴다, 바람소리라고
바람은 공기의 이동이니까
무엇이라 하기는 그렇다
느낄 수 있는 것을 두고
없다 할 건 아니다
있고 느끼는 것을 두고
이름 붙이는 게 어때서?
아침에 솔숲 지나는 소리
저녁에 댓잎 부비는 소리
하냥 헤매는 이 버릇, 딴 길로 갔나보다.
{하도 길이 많아서 한번 엇갈리면 다시 만나지 못할...
한번 만났던 인연,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으로 “됐습니다!” 하며 사는 거지.
또 헤매네.}
아하,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그게 주제였지.
안 가르쳐줘.
묵호 앞바다
희망은 적고 절망은 넉넉해진 시절? 아니고
꾸역꾸역 연기 솟듯, 뭉게구름 피어나듯 줄지 않는 희망.
문제는 실행의지로다.
그러니,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얼른 “아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