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써나가더라도 뜻은 살피자.

 

막?
(1) 마구. 
     그러니까, 막 쳐넣는다던가, 앞 뒤, 위아래가 없고, 경우 없고, 막무가내(莫無可奈)로 개기고,
     그런 자리 만들어놓고 “막 가자는 거죠?”라고 불평하던 막가파가 그런 의미의 막~이겠고.
(2) (1)과 비슷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몹시.
     말 한 마디 못하고 헤어진 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막 쏟아지려 해.
(3) 금방, 이제 곧, 바로 그때.
     막 닫으려는 참에 들어오면 어떡하니?
     첫 차는 막 떠났는데요.
(4) 없을, 아득할 막(莫).
     막막하다고 그러지?  내 형편이 그러네,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쓸쓸하고...
(5) 넓을 막(漠), 사막.
     막막한 광야를 달려가는 텍사스 카우보이.
(6) 장막 막(幕).
     비바람을 막던가, 무대와 객석을 가리는 피륙, 휘장 같은 것.
     내 사는 집은 움막.
     “희극은 끝났다”라고 외칠 때에 막이 내렸고.
(7) 막(膜)은 얇은 꺼풀.
     망막에 이상이 생기면 눈에 뵈는 게 없다.

아, 하나쯤 더 남았는가?
(8) 마지막...
     막내, 막차, 막술, 막판.

 

 

막판이라도 지극정성으로! 
곱게 다듬고 예쁘게 포장하여 리본까지 달고? 
왜?
절 가져가세요.

 

 

길게 나갈 건 없고, (1)이 문제렷다.
깔보는 것에 ‘막’을 붙였지.
막말, 막일, 막노동, 막벌이, 막치, 막돌, 막베, 막필(중광 가운데 같은),
막걸리(응, 그게 어때서?),...


 

그럼 ‘막사발’이 뭐겠냐고?
왜놈 영주들이 성 하나와 맞바꿀 정도의 보물?
그런 거 아냐.
도공들이 고관대작의 까다로운 주문에 응하거나 전통과 규격에 따라 만들어낸 정품이 아니라,
‘걍 꼴리는 대로’ 질러내어 자유혼을 담은 그릇이 되었다고?
원전(text)이 가는 데까지만 가자.  무슨 해석(hermeneutic)이 그런 뻥튀기로 막나가냐?
그건... 파치야.  잘 빠지지 못한.
흠이 있어 상품(上品, 商品)이 되지 못한 것.
깨버려야 하는데, 아깝다고 흘러나온, 보세시장으로 빠진 것들처럼.

내 고향은 분원.  백자도요가 있던 곳이지.
뒷동산에 고추밭을 일구려는데, 파고파도 사금파리만 나와 헛일만 했지.
우리 집 살강, 찬장, 선반, 뒤주 위, 벽장에 온통 쌘 게  막사발, 막병...
거기에 보리밥을 고봉으로 담아먹고,
열무 김치 담았다가 씻고 나선 식혜도 따라 마시고,
간장 종지, 밀가루 병, 흑설탕 단지, 초 단지, 그런 걸로 쓰기도 하고,
여물광에 쥐약 놓던 접시도 그렇게 나온 것이었다.
잘 빠지지 못한 것들이 용케 목숨을 부지하여 요긴하게 사용된 것들.
그것들은 사대부의 진열용 사치성 소장품이 아니었다.

 

 

내가 좀 흥분했는가?
나는 막사발, 내력을 밝히는 중이거든.

새삼스레 왜, 응~?   
막 닫으려고 하는 중이야, 이게 막호(號)야.
살 길이 막막한 주제에 막가는 것 같아서. 
막장에 이른 건 아니고,
막 치고 포장마차 열었는데
내놓을 것도 없으면서 손님 기다리는 꼴이라니.

해서, 정리하고
들어앉으려고.
어디에?
음, 뭐, 청산행이랄까...
아주?
그을~쎄...  떠나면서 잔교(棧橋)를 불사를 건 없겠지...
막간이라고 할까,
그래야 다시 돌아올 때 얼굴이 좀 남아있겠지.

 

 

그리고 이걸 굳이 밝혀야 할지...
만남이 기다려지더라고.
닫힌 듯 보이지만 빗장 걸지 않았거든.
그렇게 정이 헤퍼서야...
그래도 막을 가리는 번짐,
막 슬퍼지는 걸 어쩌지 못하겠네.

 

에잇, 뚝!
하기 전에...

 

 

                   도토의 변


         도공의 손에 온전히 맡기노라 한 것은
         말짱한 입놀림뿐이었습니다
         심하게 얻어터질까 은근히 겁이나
         물레가 한 바퀴를 돌아올 때마다
         이리 비쭉 저리 비쭉 한 군데로 쏠리며
         툭툭 불거져 나왔습니다
         중대가리 감싸쥔 채 발만 들이밀었고
         쓸모 있는 오른 팔은 등뒤에 감추고
         왼손잡이인 척 왼손만 살짝 내밀었고
         내어 밀던 손마저 거둔 적이 수다했습니다

        

         이젠 눈 꼭 감고 지긋이 있겠으니
         철써덕 물레 속에 던져 넣어주세요
         노긋한 찰반죽을 만들어주시고
         어질증에 눈이 팽팽 돌아가더라도
         작정하신 속도대로 돌려주세요
         티 검불 주근깨 헌데 부스럼
         제 살에 칼줄 긋기인 원망의 사금파리
         숨었던 것 거죽으로 떠밀려날 때까지
         가을물빛 오지 항아리로 말갛게 태어나
         태애앵 탄금 소리 울릴 때까지

 

           
그만, 뚝!!!

 

(P.S.  위의 시는 캐나다 거주 제 누님이 쓴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