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인정 어린  인정심문에 이어, 사실심리, 선고 다 한데 모아서


 

게으름을 느림이라고 우겨가면서 “천천히”를 부르짖던 너에게
이젠 머리 둘 곳을 찾아야 될 시각임을 알린다.
“석양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그게 무너지는 사직을 어쩌지 못하는 힘없는 충신의 탄식이 아니고,
네 모습인 줄 정녕 몰랐다고?
물이 맑으면 고기가 꼬이지 않는다고 그러면,
“물에는 고기가 있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지?
꼭 그 분만 받겠다고
빈 방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들이지 않았지?
몇 번이고 지나가셨지만,
안채에 외양간이라도 없으니 묵으실 수 있겠냐?
깨우친다는 것도 그래.
네 노력만으로 될 것도 아니고 인연이 있어야지.
하룻밤 머물 데를 찾다가 발길이 닿은 암자에서
밤이슬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침도 받게 되는 것인데,
길을 찾는 주제에 묻지 않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가령 작은 얻음이라도 있었다고 치고,
그건 행운이 아니라
네 사모하는 열정이 거기 도달한 것이겠지만,
하늘의 도우심이 있어야
열림과 뚫림이 따르는 것이거든.
그러니 너 오늘은 면벽(面壁)이나 보리수 아래를 고집하지 말고,
찬 하늘에 퍼지는 잡가를 부르며 돌아가
늙은 할멈의 몸을 데워주거라.
혹 내공이라고 할 만한 게 있으면
입김으로 다 토해내어
언 마음 몇이라도 녹여주어라.    
써야 생기지,
갈무리하다가 사라지는 것을 기진(氣盡)이라 한단다.
부풀림의 도시에서는
아름다운 짜가를 좋다고 그러면서
널 끌어들이려는 그들에게 윙크하고
그냥 인파에 섞여나가면 돼.
그렇지 않던?  싫어하는 건 자꾸 생기더라고.
해서 자꾸 뽑을 게 아니고,
또 듬성듬성 솟은 잡초는 보기 싫어도
잡초 반, 잔디 반쯤 되면
그냥 풀밭이어서 좋더라고.
잠깐 왔다가 지나가는 것들을
배신이라 나무라지 말고,
힘없는 발걸음과 쓸쓸한 등을 향하여
축복하여라.
떠난 자리를 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게 아니라,
외로움만 못하더라도
같이 있음이 불편하지 않아야 돼.
강(剛) 때문에 형(型)이 어그러지지 않고
쾌(快)를 구하다가 세(勢)를 놓치지 않는
몸놀림으로 나아가라.
깊은 숲이 아니라고 호랑이가 없을 거라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놀래지 말아라.
전성기를 지난 이들을 대할 때에
그들 생애 최고의 모습을 기억하여라.
웃음에서 느껴지는 슬픔에 목례하고,
깊이 없는 슬픔들도 무시하지 말아라.
네 오만을 고치겠다며
사랑을 주지 않던 사람을,
늘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경의를 나타낸 적이 없는 사람을,
이제는 품어야지.
더 이를 말이 없어서는 아니지만,
그럼...
 

 

 

 

지난 한 해

공동체를 한다면서

한 줌 사람들 모으고는

그들의 등짝만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