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절현(伯牙絶鉉)
<살구꽃 봉오리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마침 그때 한국에 있게 되어 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긴 얘기 필요 없고, 며칠 후에 책을 수거하게 되었으니, 어물어물하다가는 서평만 읽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그거 두고 가라.” 하시는 바람에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재작년 8월, 78세로 별세하신 이오덕 선생님--그런 분이 ‘선생님’입니다--,
“부고는 내지 말고 나중에 ‘즐겁게 돌아갔다’고 알려라” 그러셨지요.
그분의 시대로...
빛과 노래 가득한 그 곳
나는 가네 빛을 보고 노래에 실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그 책은 이오덕과 권정생의 편지 모음입니다.
1972년 당시 47세였던 이오덕은 문경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중견의 아동문학가이었습니다.
그보다 열두 살 연하의 권정생은 안동에 있는 시골 교회의 종지기(치기)이었습니다.
어느 기독교잡지에 실린 무명작가 권정생의 동화를 읽은 이오덕은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보배’인 권정생을 물어 물어 찾아가 만납니다.
그렇게 시작한 관계이었습니다.
이오덕, 그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가난하고 힘겹고 아픈 몸으로 죽음과 몇 번이나 싸우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권정생을 지극히 보살핍니다.
권정생. 그는 성자입니다.
허물어져 가는 흙벽돌 집에서 검정 고무신 신고 사는 그는
멸종된 걸로 간주되는 프랜시스 적 영성의 담지자(bearer)입니다.
성자는 성자인데,
구렁이와 쥐와 한 집에서 사는 사람인데,
세상사람과 영 달라서 그런가, 지지리 못살아서 마음이 피질 못했나,
보는 이, 듣는 이를 답답하고 화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어떤 때는.)
그 권정생을 이오덕은 어른이 아이 달래듯, 그러나 정말 존경하고 아끼는 태도로 품었습니다.
매화의 등걸 같다고 할까, 이오덕은 한 생명의 지주(支柱)이고 보석함 같은 대인이었습니다.
‘아동문학’이라니까 시시하게 들리는가요?
‘한글을 지킨 이들’이라고 그래도 “뭐 별로...”인가요?
한 분은 가셨는데, 지음(知音)과 백아절현(伯牙絶鉉)이라는 고사가 생각납니다.
이 글을 읽은 친구가 한 줄 남겼습니다.
속현 (續絃) - 재혼하다.
단현 (斷絃) - 이별하다.
절현 (絶絃) - 이별을 통한 결합
세상살이는 줄(絃)타기인가 봅니다.
제가 대꾸했습니다.
외줄로도 생사의 고해를 넘을 수 있다면 그것도 타기(乘)이겠는데,
보통은 여러 줄로 노래하며(彈絃) 살아가지요?
주자(奏者)가 없어도 바람만으로 금현(琴絃)이 소리를 내는지는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