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2
소양(小恙)에 자리보전할 것은 아니라서
어둑해진 저녁께 잘 가지 않던 저수지를 찾아갔는데
몇 해 전 이 동네에서 떠난 줄 알았던 egret(백로)가 떼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했다.
놀라 날아가면 안 되지... 그러니 다가가지 못했다.
응, 저건 뭐지? 딱 한 마리 외로이, 아 blue heron(왜가리)이잖아!
당기자면 망원렌즈가 필요한데, 에이 나까지 대포 들고 다닐 건 아니지.
{그래도 좀 아쉽구먼.}
들여다보면 별게 다 있다.
거기 있는 것들은 오늘 먹이사슬에서 살아남은 것들.
짝이 늘 같은지 모르겠으나 둘이 붙어 다니는 것들이 있다.
같이 있는 동안 편안하고 동행을 즐기면 됐지.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여”는 아닌데 어쩐지 슬프기만 한
에이 사람이 왜 그렇게 생겼어, 박재삼 아저씨 얘긴데
그러셨잖아, “아득하면 되리라”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이 아니고
가까워졌기에 더욱 멀어진.
뭐 그런 말이 다 있냐고?
수렴-최근접이라는 느슨한 뜻으로-할수록 겹쳐질 수 없음을 절감하다가
결국 대기권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공전하고 마는
구심력과 원심력이 맞물린 궤도운행에 피곤하여 자폭하는...
에헤, 그러면 안 되니까... 우리 그냥 아득하기로.
아득한 채로 그리워하기로.
반짝반짝 작은 별
그 반짝거림은 별이 어때서가 아니고
대기권의 먼지 때문
거기에 늘 그냥 있는데도
{광속, 광년 염두에 두고 소재파악하려 들지 말게}
어디 갔다 왔냐고 그러지 말기
보이나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주 안 보이게 되는
그건 떠남
응, 저게 뭔가 싶은데 확인할 수 없다가 뚜렷이 드러남
그건 다가섬
오랜 연애에는 그런 明滅이 있더라고
두 개체는 동일한 시공의 좌표를 점유할 수 없거든
自己愛가 아니고서야 타인을 사랑하는 건데
떨어져 있는 존재에게 너는 왜 나 같지 않냐 그럴 게 아니지
{거리는 다름이야
같은 나라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아주 같은 건 아닌데}
조바심, 그건 놓칠 수도 있다는 걱정
질투, 그건 실현 가능하지 않은 독점욕
분노, 그건 상실한 것을 확인사살
연애 그거 애태울 때나 좋은 거더라
곁에 두고도 허락하지 않고
바라보면서 소유하지 않고
떠나는 줄 알아도 잡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돌아왔을 때 추궁하지 않고
담담할 수는 없지만 타오르지 않고
그래도 좋다 그러고
한참 지난 후에 그래서 좋았다 그러고
아팠지만 그것조차 좋았던 때를 손실로 여기지 않기
오래 기다린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