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양주동(无涯 梁柱東)은 교통사고를 간신히 피한 후에 “국보(國寶)가 사라질 뻔해구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0옥은 ‘우주보’라고 한다면서?) “중국에 공자가 있다면 조선에는 양자(梁子)가 있다”라는 말도 있고. 요즘 표준으로는 그렇지도 않지만, 74세를 누리셨다면, “천재는 요절한다”라는 말에 비추어보건대 “쩝, 아닌데...”이다. 큰 학자이셨지, 뭐.
천재라고 범용(凡庸)보다 빨리 죽는 것은 아니다. 오래 살았으나 이렇다 할 공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의 가버림과 견주어볼 때에 ‘장래가 촉망되는’을 넘어서서 이미 ‘뭔가 보여주기 시작한’ 사람들의 죽음은 더욱 아쉽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어느 존재라도 대치할 수 없는(irreplaceable) 일회적(einmalig) 머묾이지만, 천재의 상실은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일 것이다.
학자라면 '찾아내는' 이들이니까, 오래 엎드리고 있으면 업적과 명성이 쌓일 것이다. 하긴 네 잎 클로버를 자주, 많이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상적인’ 클로버만 있는 곳으로 가서 쪼그리고 있던 시간은 길었는데도 “못 찾겠다 따까리~”하면서 허망한 표정으로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요령’도 필요하니까 꼭 ‘요행’ 쪽으로 돌릴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천재’라면 ‘만드는’ 사람들에게나 적용될 말이 아닐는지? 하긴 ‘찾기’와 ‘만들기’가 확연하게 가를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니까.
칸텔리(Guido Cantelli)라는 지휘자가 있었다. 36세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라졌다. 그는 이십대에 이미 NBC, 뉴욕 필, 런던 필을 지휘했고, 라 스칼라의 상임 음악감독이었다. 큰 나무가 갑자기 쓰러지면? 그런 대로 괜찮지만 아주 쬐꼼만 키가 작은 나무들이 빛을 보게 된다. 칸텔리의 급작스런 사라짐으로 번스타인과 카라얀이 덕을 보았다고 할는지. 까다롭고 사람 칭찬하지 않기로 유명한 토스카니니가 그의 제자(protegee)로 칸텔리 한 사람 정도를 맘에 두었다는데,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니까 전인(傳人)을 남기지도 못한 셈이다.
활동 경력이 짧고, 당시 녹음기술이 그저 그랬고 보니, 그의 천재를 입증할 만한 음반을 남기지 못했다.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그런 음반을 듣고 있노라면, 조악한 음질 때문에 편안하지가 않다. 작곡가는 역사를 뛰어넘어 실물 크기로 다가오지만, 연주가는 ‘전설’로 남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수십 년 지나온 나의 궤적이 시원치 않으니까, “학교에 있어야 할 분이었는데...”라는 민망한 소리를 듣는다. Job's comforter? 나는 남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제자 하나쯤 두고 싶다. 하릴없이 이렇게 낙서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