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지키다가 눈이 퀭해져서

 

아빠 따라 천리 길 머나먼 길을
봇짐 지고 타박타박 피난 온 소년
(...)
머지 않아 이 땅에 평화가 온다
씩씩하게 싸워라 피난 온 소년

 

 

그렇게 대구에서 살게 되었는데,
영양실조로 다리가 꼬이게 되었다.
어느 날 미군 기지창 앞에 쪼그리고 앉았는데,
짚차 타고 지나치던 군인이 ‘쪼꼬레또’를 던졌다.
자존심 때문에 손이 나아가질 않았다.
배고픈 놈이 한둘인가,
내 발 앞에 떨어진 것이지만
다른 애들이 달려들었다.
그 후
날마다 그 자리에서 그를 기다렸다.
다 그게 그것 같은 코박이들 중에서도
그를 가려낼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군용차가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만나거든 인사해야지,
“쌩큐 베리 마치.”
거기 애들이 좀 많아?
그가 나를 알아보겠어?
그가 오기는 올까?
참 여러 날 그렇게 기다렸다.
맞다, 그다.
그냥 지나치려는 차를 좇아 달려간다.
“할로, 할로, 스토~옵.”
그러다가 넘어졌고
차는 사라졌다.

 

 

나무꾼이 바위에 기대어 땀들이고 있는데...
아니 이런, 토끼가 굴러 내려오더니 바위에 부딪쳐 즉사했다.
두개골파열?  사냥개에 쫓기다가?
그런 것 따질 게 아니고...  이게 웬 떡이야.
가만히 있으려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누가 보면 “저거 미친 X 아냐...” 했을 것이다.
다음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일이라야 나무 자르는 것인데,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발등을 찍든지
큰일낼 것 같아,
가만히
그 바위에 기대고 앉는다.
응, 이상하다, 왜 안 오지?
그러기를 몇 날, 몇 달 이어졌는지,
그새 그는 쪽 말랐다.
못 먹어서?  그리움으로?
아, 마누라는 도망갔다고 그러대,
저런 목이 길어 슬픈 짐승하고 살다가는
입에 풀칠도 못할 거라고.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건데...
그런데,  토끼는 왜 안 와?
(임마, 그때 그 토끼는 네 뱃속에 들어갔잖아.)
그래도...

 

 

              바람 부니까,
              아니 바람 없어도 떨어지고 구르는 것들이니까,
              도토리도 밤톨도 네 앞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꼼짝 않고 기다린다고 모을 것도 아니고,
              또 그것만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제 그만 깨어라, 일어나라.

              그리고, 나이를 생각해서
              스쳐 지나가는 라라를 보았다고
              뛰어내릴 것도, 따라잡을 것도 아니니라.
              그냥
              경춘선 간이역에 소복이 모여 하느작거리던 코스모스를 본 것처럼
              “참 곱구나, 좋은 여행이네. 떠나길 잘했지.”라는 마음으로
              그냥 지나치면 될 것이다.

 

쾌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