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Sunday (1)

아름다운 날.
꽃이 진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뜨락에 새로 핀 꽃들이 반긴다.

 

 

교회(交會)를 향하여 나선다.
어디에선들 예배드리지 못하랴. 

그렇지만, 서성거리다가 살날을 허비하는 이들은 얼마동안이라도 어딘가에 들어앉아야 한다. 

부처님처럼 정좌하지는 않더라도. 

그래서 우리는 예배당으로 간다. 

‘당(堂)’.  참 고운 글자이다. 

 

 

     

 

    

     들판을 가로질러 예배당으로 가는데,
     “아, 이런 날 왜 상자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하나님 접견실이 따로 있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는 보리 익는 냄새와 자운영(紫雲英, 이것도 고운 말)이 깔렸겠네, 지금쯤.
     여기는 어떻다고, 들꽃이 만발하다.

 

 

            썩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들어서는데,
            아, 안이 더 좋은 걸.
            거기도 좋은 꽃 놓였고,
            몇 안 되는 예배자들이 군방(群芳)인 것을.

            따뜻한 날인데도, 뒷줄에 누운 아기 때문에 불을 지폈다.         

            괄게 타지도 않는데 적당한 온기가 전달되고,
            생솔가지 냄새 같은 그리움으로 채워진다.

 

            하나님의 세키나(Shekinah).  
            스랍(Seraphim)의 찬양을 받으소서.
                   이 백성 기도와 또 예물 드림이
           향내와 같으니 곧 받으옵소서
  (찬 50)

 

            나는 요즘 설교하지 않는다.
            설교하는 전도사님에게 죄송하지만,
            창 밖을 내다보며 *‘The Canticle of the Creatures/Brother Sun’을 불렀다(속으로). 
                                                         (* 그냥 ‘태양의송가’라고 하면 ‘위대한 태양이신...’을 지칭하는, 험한 세상에 우리가 산다.)
            그러는 동안 젊은 설교자의 아기는 옹아리를 하고.

 

 

나는 사람들이 향수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지독할 정도라면 곤란하지만, 은은한 citrus 계열의...
우리는 이제 늙어서
(늙음은 먼저 냄새로 온다)
살짝 벌어진 석류 같은 입술 사이로 스며 나오는
치자 꽃인지 잘 익은 수밀도 냄새 같은 것을 낼 수 없으니까,
“서로 아는 사인데 숨길 것도 아니고...” 식으로 뻔뻔하지 않으려면,
당뇨환자의 입내나 메주 냄새 같은 것은 가렸으면 좋겠다.

 

           예배당에 들어올 때는 향수 없이, 꾸밈없이.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전례에는 유향(乳香, frankincense)으로 예물 드림이 어떨는지.
           (개신교에서는 보통 예배 시 향을 사용하지 않지만.)

 

 

밭에서 따온 상추, 쑥갓을 씻고 고기 구워
둘러앉았다.
밥상공동체.
밥은 나누어 먹는 것,
여럿이 같이 먹는 것.

 

 

의사 앞에서 스스럼없이 옷 벗듯이
제 아픔을 드러낸다.
한 주일 동안 채워둔 억울함과
그 전에 이미 길어진 슬픈 이야기들을
무용담처럼 쏟아놓는다.

 

 

 

주일에 일하지 말라고 그러지만,
텃밭 김매기 정도야...
그렇게 허리 구부리고 있다가 누우니
하늘이 다가온다.

 

 

                  저 몇 조각 구름이 게으르게 떠있는 하늘(coelum naturae)은
                  뚫고 내려오셨다가 승천하신 은혜의 하늘(coelum gratiae)이며,
                  만물이 변화하고 신천신지로 임할 영광의 하늘(coelum gloriae)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