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내리는 밤

 

 

책을 읽기에 그만인 넉넉한 때(讀書三餘)로 겨울과 밤과 비 오는 때를 꼽는데

“에고 이 좋은 때를... 게다가 은퇴자이기도 한데”를 모르는 바 아니나

비 내리는 겨울밤에 눈은 침침하겠다, 머리는 개운치 않아

나와 걸었다.

찬비에 눈이 섞였는지 주렴처럼 발이 선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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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면 비 눈이면 눈이지 진눈깨비는 “아냐”라고?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개비는 되지 말자”? 응?

내 시인의 진심은 의심하지 않아.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그래, 그대는 ‘연탄재 시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또, ‘연탄 한 장’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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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인 지난 대선에 무슨 시민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인가를 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그런 건 아니었겠지.

시인은 혁명가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 그래야 하기도 하겠는데

시인 혁명가가 사용하는 언어? 시어이어야지.

그렇지 않았네.

어느 날 인터넷신문에서 본 인터뷰 사진,,, 너무 피폐했더라.

 

다른 편에 섰던 큰 문인, 뭐 그도 그럴 수 있는 거지만

이제 그만하시게, 아이가 주목 받고는 재미 들려 계속 떠드는 것 같아.

왜 얼굴이 그렇게 될까?

{몇 해 위이지만 학교 같이 다녔지, 그때 얼굴, 그리고 함춘원 분수 앞에서 나눴던 몇 마디 기억하네.}

 

“시인이 시인다워야”라는 말은 의미가 없지

‘시인다움’에 동의한 적이 없으니까.

아무튼지, 시인들은 무슨 ‘캠프’ 그런 데에 이름 걸고 나서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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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땅에 내리는 눈, 삼남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여기서는 그런 눈 보지 못해.

눈 많이 왔다지? 춥고?

{춥지 않고 눈 많이 오고...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지? 난 이제 추운 데선 못 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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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내린다 해도 녹고 말텐데, 제 모습으로 놓여 누웠다 해도 물 되기 잠깐인데

강이나 바다로 내리는 눈은 더?

덧없음에는 비교급이 없네.

 

늘 한숨과 함께 돌아보는 박재삼, ‘바다에 내리는 눈’을 이렇게 시작했다.

 

내 사랑이 저렇던가 몰라

바다에는 속절없이 눈이 내리네.

 

어지간히 참았던

하늘의 이마를 스친 은은한 할 말이

겨우 생기면서는 스러져버려

내 목숨 내 사랑도 저런 것인가

억울하게 한 바다엔 오는 눈이여.

 

그리고 연탄재 시인은 그런 노래 남겼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로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겨울 강가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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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아 이제 그만! 그런 마음이었네만

어쩌겠는가, 마음이 뜨거워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고 그러면.

그래도 이제 그만.

불쌍한 이들의 여린 마음 보듬어주려면 미움으로 될 건 아니니까.

{그대 한 사람 꼬집으려 했던 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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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비 이틀 밤낮으로 줄곧 내리고 있다.

한여름 백일 동안 내리지 않아 초목을 마르게 하더니 이 겨울에 왜?

 

싱숭생숭할 것도 아니고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는 이 밤에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그래,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 읽자!

때 되면, 문 열고 마음 맞는 친구 맞아들이고, 문 나서서 마음에 끌리는 곳도 찾아가게 될 터.

{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出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

 

그래도 좀... 그렇다.

이미 새해 맞고서 이런 기분에 젖을 건 아닌데...

우리말로 옮기지 않고 그냥

 

酒盡燈殘也不眠

曉鍾鳴後轉依然

非關來歲無今夜

自是人情惜舊年

 

-姜栢年, ‘次唐詩高適除夜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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