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는 길

La Traviata.  ‘동백 아가씨(椿姬)’ 말고 무슨 다른 말로 옮길 수 없을까?  (그건 그렇고...)
아들 알프레도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제르몽이 부르는 노래:
“프로방스의 바다와 언덕들, 누가 네 마음에서 그것들을 지웠단 말이냐?”
참 좋더라.  젊을 적엔 나도 불렀다.  사람들이 견디지 못해 귀를 막더라도.

 

미뇽은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을 부르며 희미한, 아주 흐릿해진 고향을 재생하려고 노력한다. 

   

 

 

 

그래, 누가 우리 마음에서 고향을 지워버렸단 말인가?
아, 고향이 있기는 한 건지?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운 고향은 아니러뇨

 

 

나도 모시지 못하는 아버님 뵈러 고국에 들리는데...  서울.

 

시인 김규동이 한 줄 썼더라.
    간판이 커서 슬픈 거리여, 빛깔이 짙어서 서글픈 도시여
많은 건 술집, 더 많은 건 교회...  그것들이 립스틱 짙게 바르듯이 네온 간판을 걸고.

 

도시의 밀림에는 거미줄 같은 길들이 사통팔달이라 가자면 어디로든지 갈 수 있다.
“계속해서 안양 수원 안산 방면으로 가실 손님은...”이라는 안내 방송 후에 문이 스르륵 열리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더라.  그 인파의 방향을 거슬리려다간 깔려죽을 것 같고.

그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거리에 낯선 나만 아니고 저들도 다 실향민이거늘. 

도시는 실향민의 주거지이다. 

 

옛적에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고향공동체’이었다.  아랫말 점백이네, 돌쇠네, 웃말 혹부리 영감네, 안골 병갑이네, 대추나무골 쌍과부네 다 젖줄, 핏줄을 나누는 한 몸이었다. 
이제 고향공동체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도시 군집체’는 늘어간다. 

‘군집체’란 무엇인가?  어떤 때에 어떤 곳에 있게 되는 바람에 그냥 모임이 된 것이다. 
삼각형의 틀 안에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당구 공 같은 것이다. 

건드린 다음에는 같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 ‘군집체’이다.

 

 

 

자, 그러면 한번 사라진 ‘고향’은 찾을 수 없는 것인가?

 

“아 그대였던가” 하며 사랑을 느낄 때에 귀로의 단서라도?
아니던데.  더 절망하게 되던 걸.

 

어머니.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어머니는 고향을 지키는 생울타리이다.
어머니는 옛집을 바치는 기둥이다. 
어머니는 지역적으로는 이미 상실한 고향공동체를 인간의 심층에 재현하고, 보존하고, 연결하는 network이다.

 

 

좀 있으면 오월, 일년에 하루 ‘어머니 날’이 있다.
어머니 가슴에 꽃 달아드리자?  그건 왜?

무슨 꽃?  동백?

 

 

나는 그랬다. 
어려서는 남색 치마폭에 코 묻히고,
자라서는 옥양목 저고리 고름 끝으로 눈물 찍게.

 

옷 한 벌 새로 해드릴 수 있으면.

 

 

생선 장수 아들 박재삼의 ‘어머님 전상서’ 중 일부이다.

 

    아들은 바람을 피워 나서기도 하고

    뜬구름 되어 감감소식이 되기도 하고,

    그럴 때는 바람 편에 뜬구름 편에

    어찌어찌 수소문하여

    근심하는 하서(下書).

    (...)
    바람은 노상 부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꽃그늘이나 못물 가에 쉬고 싶기도 하고
    또한 뜬구름은 늘 떠도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고목(古木)의 둥지 같은 데 들고 싶기도 한 것을,
    정말 그런 것을,
    언제 기미라도 알았을까,
    어머니는 내가 지쳐 쉬고 싶은
    마음이 되어 있을 때에는
    편지 속 그 순한 말씨와 사연 안에
    한 쉴 자리를 은연중 마련하고 있었다.

 

 

나는 쓸 수 없으니,
누가 ‘어머님 전상서’ 붙이겠거든 빈 칸 활용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