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
망초라... 이름이 왜 그런가.
외래종이라고 구박하는데, 땅을 맡아놓은 풀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라가 망할 때 들어온 것이라?
밭농사 다 망치니까?
미운 왜놈들과 연결지어 ‘왜풀때기’라고도 했고,
fried egg 같다고 해서 계란꽃이라고 하고,
북조선에서는 ‘돌잔꽃’이라고 한다니 그만하면 듣기 좋다. 그 외 이런저런 다른 이름들도 있다.
하여 나병춘은 이런 시를 썼다.
개망초는 이름이 많아서 좋겠다
흥부네 자식들같이 지천으로
끈끈하게 이어가는
그 단순하고 살가운 삶이 정말 부럽다
구름꽃
계란꽃
풍년초
버려진 묵밭도 빈 집도
제 집인 양 떡 버팅기며
문패를 달고 풍경을 만드는
그 배짱이 정말 부럽다
허허허 실실 웃고 춤추며
벌들에게 나비들에게
공짜로 세를 주는
그 가난하고 부자인 마음이
정말 부럽다
나도 그런 이름 한 번 갖고 싶다
그것은 잡초의 대표격이라 할 만큼, 잘도 자라고, 정말 지겨운 것이다. 농사꾼들은 아주 싫어한다.
거기다가 ‘개’자를 붙이면 보통 격이 떨어지지 않는가?
이하 박주현의 시이다.
밭곡식 다 망친다 붙여진 이름
어쩌다 잡초가 된 개망초(莽草)
너의 조상은 고귀한 국화였었지.
아침 이슬에 눈물 훔치고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하나의 의미로 다가선 향기
채울 수 없는 허기의 갈증
한 줄기 바람에 흔들리다가
하얗게 피어난 생명에 꽃
비바람 이겨내며 소생한 비명
개살구 개머루 개불알꽃
너와 나 모두가 억울한 이름들
비슷한 뜻과 분위기이겠는데, 이향아도 ‘개망초 칠월’에서...
칠월 들판에는 개망초꽃 핀다.
개살구와
개꿈과
개떡과
개판.
‘개’자로 시작하는 헛되고 헛된 것 중
‘개’자로 시작되는 슬픈 야생의
풀꽃도 있습니다.
‘개망초’라는.
복더위 하늘 밑 아무 데서나
버려진 빈 터 허드레 땅에
개망초꽃 여럿이서 피어나고 있다.
나도 꽃, 나도 꽃,
잊지 말라고.
한두 해, 영원살이 풀씨를 맺고 있다.
개망초 지고 있는 들 끝에서는
지평선이 낮게 낮게
흔들리고 있을 거다.
같이 살자고 몇 사람 모아봤는데, 와, 정말 uncontrollable...
다시 보니 ‘꽃’이다.
생명이 다 그런 거지. 사람이 다 그렇고.
따로 곡물이나 채소 농사짓지 않는 다음에야 고운 시선으로 봐주자.
가꿀 것은 없지만--가꾸지 않아도 되니까, 사랑해야지.
장미원도 아니고.
그냥 ‘식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촌수가 없으면 나중 사랑으로 만난 것이겠는데, 이건 한 배에서 났으니까 싫고 좋고가 없다.
어쩌겠는가. 동기간의 사랑?
이하 안도현의 시이다.
눈치코치 없이 아무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 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이 늦여름 한때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 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그럼, 그것도 사랑이지. 사랑이라고 ‘로미오와 쥴리엣’뿐이겠는가.
양문규의 시.
우리는 왜 별들을 헤아려
사랑이라 노래하지 못하고 사는 걸까
오늘밤도 그 핏기 없는 살덩이를
별빛 속에 사르지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만 떨구고 사는 걸까
하늘 한번 떳떳하게
우러러보지 못하고 사는 걸까
시궁창보다도 더 어둡고
암울한 이 땅 속에
살과 뼈를 묻고
거친 비바람 헤치며
억만년 꽃을 피우고 지우며,
또 그렇게 우리는
그대들의 꿈과 희망
고뇌와 실의 속에서도
더불어 함께 살아온 이 땅의
참 눈물이면서도
우리는 왜 별들을 헤아려
사랑이라 노래하지 못하고 사는 걸까
오래 간 만에 한국을 다녀오고서는 다들 그런다.
“정말 잘 살더라.” (어디 다 잘 살겠는가.)
예전에 미국 올 때는 선망의 눈총이 등에 꽂힘을 느끼며 떠났겠는데,
이제 한국에 돌아가 보면 “그래, 고생 많이 한다지?”라는 시선을 느낀다고.
아까 그랬지? ‘싫고, 좋고’가 아니고, 너, 나 도리 없이 한 통속,
빈들에 틈새를 찾아 제 자린 줄 알고 피는 개망초, 우리 사랑할래?
이하 장석우 시에서 잘라냈다.
남들이 모두 직선으로 앞질러가
높은 곳에 눈빛을 심어 두고는
거기에만 물을 주고 있을 때
낮은 도랑가를 서성이며
꽃잎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깊고 높은 산 속이거나
잘 가꿔진 논밭이거나
화사한 꽃밭에도 한 번
들지 못하고, 거친 언저리에서 묵묵히
바람 앞에 꽃잎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이, 그래도
적적하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피고 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낮은 목소리로!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 12:19).
* “우리 모여 삽시다” 하고서 몇이 모였더랬지. 거의 흩어졌지만.
떠난 이들 용서하고, 남은 이들 사랑하고.
그래, 참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