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길에서

경로석 차지하자고 빨리 늙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앉고 싶다.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서 있어도 안 비켜주더라.
빨리 서리를 뒤집어쓸까...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이라 하였거늘.

 

                     

 

 

                                                                   

 

 

지금 생각하니 괘씸하다.
여학교 졸업식에서 ‘은발’을 부르던 계집애가.
에이 고놈, 누가 말렸어야지,
좋은 노래가 없어서 어떻게 아이가 고런 걸 고르냔 말야.

 

Darling, I am growing old,
Silver threads among the gold.

그대로 옮기자면,
여보, 나도 늙는가 보오.  이젠 흰머리가 수북하구먼.” 쯤 될 것이다.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 하여...

 

젊은 날의 추억은 한갓 헛된 꿈이랴
윤기 흐르던 머리 이젠 자취 없어라

그쯤이면 수준급이다.

 

서산에 해 저물 듯이 나 이미 황혼 속에

그것도 괜찮네.

 

그래, 그렇게 옮기면 원작보다 낫다.
어색한 직역은 우리 정서에도 안 맞고.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꿈길에서’ 가사가 아주 그만이라고.
그래?  그거 삼천만--아, 언제 때 얘기냐--이 함께 부르는 건전 가요이긴 한데... 

꿈길.

그건 참 달다.

 

꿈길밖에 없는 우리의 신세
님 찾으니 그 님은 날 찾았고야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路中)서 만나를 지고
(진이의 상사몽을 김안서가 옮김)

 

 

그렇지만...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처음부터 엇나가는구나.

 

‘Beautiful dreamer’가 ‘내냐/ 기냐’부터 따지자면 김새니까
그 얘긴 일단 접고,
Beautiful dreamer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고,
꿈꾸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얘기.

 

그 옛적에 돌아다니던 노래책에는
제목이 ‘꿈꾸는 가인’으로 되어 있었다고.
그게 아주 멋진 거야.
가인(佳人).
나 같은 나이팅게일(Oops!)은 가인(歌人)일 게고.
(그리고, “내 마누라가 말이지...” 하지말고 “가인(家人)이 말일세”로 나와야 선비이지.)

 

그리고, 
아름다운 꿈이라면 뭐 좋다고, 뭐 하러 깨냐?
그냥 자지, 아니 꿈꾸지.
 

벗이여 꿈 깨어 내게 오라... 
이쯤이면 포악이 극에 달한 수준이다.
“꿈 깨!”라는 말의 야비함을 안다면,
그럴 수 없는 거지.
꿈이라도 꾸자.
그러면서 살자.

 

(좋게 봐준다고 하더라도,)
꿈을 깬 다음에 (다가) 오는 게 아니고,
눈뜨고 보니 “아, 당신?”,
그렇게 되는 얘기.
건전 가요 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여~ 꿈속에서 만나자”쯤 된다.  

 

 

한갓 헛되이 해는 지나
내 맘에 남 모를 공허 있네...

어휴,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어쩜 나도 이런 못된 말을 배우게 되었을까...)

 

Sounds of the rude world heard in the day,
Lulled by the moonlight have all passed away.

 

백미(白眉)?  씩이야.
그렇지만, 예뻐.
한낮의 야만스러움, 그것 싫어.
그 ‘쏘라니’(騷亂이)를 달빛이 살살 달래서(lullaby) 보내버렸다니까.

 

그래, 한낮은 싫어.
그런데, 너 왜 그런 노래 불렀어?
한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라고.
이제야 우리 때 된 것 아냐?

 


 

Epilogue:
그래...  꿈 깨자~~~
‘꿈길에서’는 그 마시는 게 창피해서 자꾸 마시던 포스터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몇 일 전에 지으신 건데,
당시 주머니엔 ‘딱 한 잔’ 값도 안 남았더라는.
그 땐 저작권 보호가 안 되어
주옥같은 노래를 구비 구비 펼쳤어도
들어오는 게 없었거든.

그러니, 돈 되지 않는 노래만 (들입다) 토해내고 배가 고팠더라는 얘기.

그래도 난 겨울 준비한다며 노래 한 번 부르지 못하는 개미보다 베짱이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