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손맛 고토의 맛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멋들어진 말이지만, 흠, 어느 건 들고 갈 수 있겠습니까?
{아까울 게 없다는 뜻인 줄 알면서 꽈배기 본성으로 한번 꼰 줄 아시겠지요.}
그러셨잖아요?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바깥어른 납북 당하신 후에 들인 남자가 하날 텐데, 에고 어디 힘쓰거나 일 잘할 사람인가요.
영일 씨 흉보자는 게 아니고, 제가 그렇거든요.
일은 안 하고 삼식이로 살아왔거든요.
종자 카탈로그 보며 꿈꾸다가 수십 종 꽃씨, 채소 씨앗 주문해놓고는
너무 덥고 가문 지역인데다가 잡초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면서 밭에 나가지 않았거든요.
밥맛은 있어서, 살맛이 밥맛이니까 그래도 살 재미 잃은 건 아니지요.
아내 음식솜씨 추천할 정도로 쳐주지 않았는데
흠, 어디 가서 그만한 밥 얻어먹겠어요, 꼬박 세끼씩.
불퉁스러운 말투에 고마움 별로 표현하지 않지만
조선남자들 늘 미안해한다고요.
벌이 재주 없는데다 부대끼기 싫으니까
이룬 것도 없는 주제에 실행하지 못하면서도 귀거래사나 읊지만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라는 말
그게 어디 “꿍쳐둔 젊은 처자 데리고”라는 뜻이겠어요?
해줄 게 없으니 비교할 필요도 없는 데 가서라면 나도 좀 떳떳할까
아니지, 거기 가서조차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는 고백.
김명인의 ‘너와집 한 채’에서 갈빗댄지 서까랜지 하나 뽑아 지었다는 김사인의 주절주절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곱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나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처럼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 나 그쯤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대책 없는 인간이지만
이건 사랑 아니냐, 달리 어쩔 수 없으니 속절없다 했지만, 이건 사랑 아니냐고?
도피행각, 남자의 로망, 그런 게 아니고
그런 여자와 그렇게 살다 가면 되는 거지
청담동 마님과 강남스타일로 살자면 얼마나 힘들겠니, 해서
몰래 숨겨놓은 애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포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나 누워
발가락장단에 철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가 구수한,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나 던져두고
옥빛 바다에 시든 배추 같은 삶을 절이고
절이다가 그것도 그만 신물이 나면
통통배 얻어 타고 휭, 먼 바다 돌고 왔으면,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은 뜻도 모르는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냈으면,
-이재무, ‘좋겠다, 마량에 가면’-
맛난 것 찾아 나돌아 다닐 때 몰랐는데
응, 김치 담글 줄 아네? 그런 끄덕임에 비로소 미안해졌지만
보상해줄 것도 아니며 새삼스레?
그러니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약진 앞으로! 낮은 포복으로 뒹굴뒹굴 엉기적.
칠천 원이 넘는 건 사치품으로 치자, 한 끼에 그 이상은 안 돼!
그러고 다니면서 잘 찾아먹었는데
다시 돌아가 산다면... 값나가는 것도 사먹고 싶다.
{신사임당이라도 내밀어야 홍어 한 점 얻어먹겠으니 말이지.}
잠자리도 여인숙 급에서는 벗어나야겠지.
겨울 깊어 봄 기다릴 때쯤이면 매생이, 감태, 파래, 모자반, 싱기 같은 남도의 바다풀 생각이 나는 거야.
코 박고 후루룩 마시다가 “앗 뜨거~”하며 고개 쳐들면 들어오는 애꿎은 동백에게
“청승 떨지 말고 꺼져~” 소리치지만
알잖니, 너 보고 싶어 왔다가 밥은 먹어야겠기에 밥집에 먼저 들른 걸.
매생이국 먹고 싶다고 남도 여자와, 식해 생각난다고 함경도 여자와 어울릴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오용하는 ‘솔푸드(soul food)’라는 말, 에휴~ 못 말려.}
비릿함, 짭조름함, 부드러움, 뜨거움, 난폭, 다시 잔잔함, 그 바다가 그리우니까
맛으로 풀어내는 얘기겠지 뭐.
남의 노래 베끼기도 짜증나지만, 오늘 내친 김에...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뻘바다에서 매생이 따는 한겨울이 오면
장모의 백년손님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매생이국을 먹으며
눈 나리는 겨울밤 뜨끈뜨끈하게 보내고 싶다.
파래 위에 김 잡히고 김 위에 매생이 잡히니
매생이를 먹고 자란 나의 아내는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여자일거니, 우리는
명주실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진실과
그 진실 훌훌 소리 내어 마시다 보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뜨거워지는 것을.
아, 나의 아내도 그러할 것이다
뜨거워지면 엉켜 떨어지지 않는 매생이처럼
우리는 한 몸이 되어 사랑할 것이다.
-정일근, ‘매생이’-
저 남도의 해안에서 왔다는
맑은 국물도 아니고 건더기도 아닌 푸른 것,
다만 푸르기만 한 것
바다의 자궁이 오글오글 새끼들을 낳을 때
터뜨린 양수라고 해야 하나?
숙취의 입술에 닿은 이 끈적이는 서러움의
정체를 바다의 키스라고 해야 하나?
뜨거운 눈물이라고 해야 하나?
입에서 오장육부까지 이어지는 푸른 물줄기의 폭포여
아무리 생각해도, 아 나는 사랑의 수심을 몰랐어라.
-안도현, ‘매생이국’-
늙으면 밥맛도 안 난다던데... 난 왜 그런지 모르겠어.
별미 찾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옛적 살던 데 가서 골목들 기웃거리고 싶다.
In the meantime... 아내에게 잘 보여야지.
없던 시절 뭐 잘 먹을 게 있었겠냐만
명절날에나 얻어먹던 서울 소고기국, 엄마 손으로 지은 독하지 않은 맛
아내가 얼추 따라잡은 것 같더라고.
고맙지 뭐.
난 그저 밥맛에 살며 잔볕을 아까워할 줄 모르고 세월 까먹지만
배부른 김에 헛소리하지는 않는다고요.
Suppertime (Walter Bren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