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회복... 다시 만나기

 

아, 뙤약볕 아래 김매고 있는데, 왜 그런 노래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
그래, 그렇게 헤어진 금순이는 살아있을까?

 

일단 시작하니까 연상작용.  이어지는 필름.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

 

            

 

             그때 헤어진 이들

             다시 볼 수 있을까...   

             만나면 알아보기나 할는지. 

                                                                            

                                                                           

                                                                             아무래도 꽃비 때문인가 봐.

 

                                                                            

 

 

 

 

‘Random Harvest(마음의 행로)’. 
그건 어머님도 보셨다. 

“그 벚꽃 만발한 집 문에 열쇠를 꽂을 때에...”라고 말씀하실 적에 눈이 빛나셨지. 


 

 

 

거기서 그들(누구더라, 배우 이름은 기억나는데, 주인공은...)은 사랑을 발견했다가 잃었다. 

흔하지.  아니 뭐 거의 다 그런 것 아닌가... 

헤어지지지 않았어도, 같이 살아도,

사는 게, 또 사랑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경우를 포함한다면 말이지. 

그들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았다.  있을 수 있는 얘기. 
그때 우리는 기억이 되살아나는 장면을 보면서 손뼉치고 휘파람불었다.

 

 


 

    

 

 

누가복음 15장.  잃음과 찾음. 
참 감동적인데...

오늘 조선 땅에 오셔서 말씀하신다면, ‘잃었던 양의 비유’는 들지 않으실 것 같다. 

누가, 양치는 일에 대해서 알아야 말이지.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누구나 알만한 이야기들, 생활 속에서 줍는 이야기들로 비유를 택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한국인에게 말씀을 주신다면,

왜나라 도둑떼에게 끌려갔던 점순이를 아내로 맞는 돌쇠의 이야기,
통일되어 만나게 되긴 했는데, 각기 임자가 있는 몸으로 만날 수밖에 없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주실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용서해주는 관계도 아니고,
아무에게도 동정할 권리조차 없고, 모욕할 권리는 더욱 없는 사람들이 만났는데,
나쁜 꿈이라면 너무 길었던 세월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로 하자,
저들을 불쌍히 여기신 분께서 “그래, 내가 한시간을 더 줄께.”하여,
25시 하루의 마지막 시간에 애통하면서 즐거워하고, 즐거워하면서 애통하고,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고,

그러다 보니 동이 트더라...
그런 얘기.

 

 

1983년 6월 30일 한국방송공사에서 시작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한마당.
정말 굉장했지...

 

 

 

 

 

 

 

드디어 서로가 내세운 고향, 나이, 이름, 헤어진 장소, 등이 맞아떨어져 대면하는데,
헤어지고 삼십 년이 지난 터이니,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과연 그토록 그리워하던 피붙이인지...
얼마나 불안하고 긴장되겠어?

어떤 가족은 아버지가 배꼽 곁에 뜸자리가 있냐고 물으니까,
아들이 내어 보이며 그제야 확 달려들어 통곡한다.
어떤 사람은 콧잔등의 마마 자국을,
또 어떤 사람은 낫에 찍혔던 자리를 살펴보기도 하고,
고향에서 부르던 별명을 기억해내서,
형제자매 부자지간 등 핏줄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날의 그 쓰라린 상처가,
그 원망스러웠던 아픔이,
그 보기 싫었던 흉터가,
그 듣기 싫었던 별명이
오랜 동안 갈려 지냈던 핏줄을 연결하는
소중한 증표가 된 것을 생각해보자.

 

 

 

가리고 다니지만,
내게도 흔적이 있다.
주홍글씨.
알아보실 분이 있을 것이다.

 

 

 

 

흉해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것 때문에 거두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