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東江)이란 호를 받고
지하(芝河). 지하에 머물 수 없는 사람. 그래도 이젠 노겸(勞謙)으로 불러달란다.
회고록도 내셨다고. ‘거(꺼)리’가 많으니까, 화려할 것이다.
가친의 호는 운산(雲山).
불러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본인도 잊으신다.
내게는 아직도 아득하고 먼 산이지만...
동창생 한 분이
“내 그대에게 호를 내릴 터인데, 앞으로는 그대를 동강이라 부르겠노라...”로 나오시는데...
이름 값 못하고 산 사람이
뒤늦게 개명한다고 품격이 올라갈 것도 아니고,
“그것 참...”이다.
가만히 있자니 그렇고,
뭐라고 하자니 더 곤란하고,
분위기로 보아 칭찬인 것 같은데
어른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처럼
곤혹스러운.
어쩌지요?
이름도 무거운데
호까지 들고 다니겠어요?
그래도 주신 건데...
동강, 동강,...
잘라져서 짧아진 토막이라면,
그건 제게 어울리겠어요.
타다 남은 부지깽이? 맞고요.
베인 바 된 그루터기? 맞고요.
자투리? 맞고요.
아이 손에 쥐어진 빨다 남은 엿가락? 맞고요.
몽당연필? 맞고요.
그래도 쓰임 받는다면.
아, 흐름이라 하셨지요?
영월에 있는, 무슨 환경보존의 씨름 마당은 아니겠고요,
그럼 뭘까?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중에서 어떤 것이 동강(東江)일까?
전(殿)에서 나와 동으로 흐르는 물(겔 47: 1)을 이름일까?
감당할 수 없지만,
받지요.
겁이 없지요?
참칭(僭稱)인지도 몰라.
거지발싸개 같은 벽지로
벗들의 사랑방을 도배할 때
이미 알아봤지요?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강호를 횡행하는 천둥벌거숭이를
꾸짖고자
“뭘 믿고?
순 동강(똥깡)이구나.”
그러신 거지요?
그래도 받을 게요.
가람이란 낮은 데로 찾아가니까,
고르자고 흐르는 거니까,
굽이굽이 돌아가니까.
고맙습니다.
자꾸 죄송하단 생각뿐이어서,
부끄러운 이름 오르내리지 않도록
폐문 수련해야 되나...
그런 마음으로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