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은 맞는 말이지만

 

백목련 봉오리들이 성상 앞에 빽빽이 세운 초 같더라. 
밤새 비 내리고 개여선지 다음날 아침에 일제히 터지더라. 
밤마다 천사가 들여다보는 것 같아 잠자기가 좀 그렇더라.
“누추한 곳이라 당신을 들일 수 없으니 엿보지도 말고...”라고 말하려고 그랬지.
입맞춤을 당하고서야 주절거릴 수가 없게 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함박눈 내리듯 꽃잎이 떨어지대. 
천사는 깃을 잃는가?
내 눈만 들여다보는 게 부담스러워 외면하고 외쳤다.  
“Look homeward, Angel!” 
내 알지, 더 이상 비상(飛翔)이 가능하지 않았던 게지.
돌아가지 못했구나.

 

그러니까, 꼭 아흐레 동안 연등(燃燈)이 달렸었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더니. 
그래도 허무는 아니라는 얘기. 
잊혔던 벗에게서 소식 날아오듯
꽃 편지는 이어질 테니까. 


                

          (www.sankyo-kasei.co.jp/photo/im2001/19-100.jpg)                           (www.sudeoksa.com/jongmuimages/j12.jpg)

 

 

가는 사월, 오월이 들어선다.
그침 없는 흐름처럼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지만,
시, 날, 달 같은 토막이 없다면 시간을 의식할 수 있겠는가.

 

“잿빛 글자(grey-letter days)의 줄이 끝도 보이지 않는데,
우리 이젠 빨간 글자의 날(red-letter day)을 만들어요.” 해서,
하룻밤 같이 자기로 했다.
중늙은이들이 송사리 잡겠다고 첨벙거리고,
등잔불, 혹은 촛불 켜고 경전 읽고,
화톳불 피워놓고 노래불렀다.
    축제의 노래 함께 부르던 즐거운 날에
    스치듯 만나 잊을 수 없던...


 

           

 

 

그리고, 우리는 그런 부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제발, 나를 길들여 줘.”

 

헤어지기 전에 만날 날을 정하자고?
옳소, 대찬성이오.
    “시간을 약속하고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언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지 알 수 없잖아?

     무언가 정해 놓을 필요가 있어(...)
     어떤 날은 다른 날들과, 어떤 시간은 그 외의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예를 들어 사냥꾼들은 목요일마다 동네 아가씨들 하구 춤을 춘단 말이야.

     그래서 내게 목요일은 기막히게 좋은 날이지. 포도밭까지 소풍을 가기도 하구.

     그런데 사냥꾼들이 아무 날이나 춤을 춘다고 생각해 봐.

     그저 그 날이 그 날 같을 게고, 나는 휴가라는 게 영 없을 거 아냐?”

 

 

 

토요일 밤, 토요일 밤에 나 그대를 만나리...
그리고 날 새니, 주일이다.  나 그 분을 만나리.
노래 뿐 아니고, 말씀도 있어야.

마침 열린 창 틈으로 감 꽃이 날아 들어왔다.
 

어떤 하루라도 미완성은 아니고,

나름대로 열매가 있기 마련입니다.
성실이란 무수한 반복을 견디는 것입니다. 
재미없는 놀이라도 끝내는 것입니다. 
(하다보면 흥이 오를 수도 있는 것.) 
그리고, 어처구니없이 실점했다고 해서 경기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 ‘견딤’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르더군요. 
감 꽃 떨어진 자리마다 홍시가 익어갈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