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리 (1)

낱말의 뜻?
‘~거리’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 뒤에 붙어서 그 시간 단위를 주기로 하여 일어남을 뜻하는
접미사라고 할까, 달거리, 하루거리처럼.
해거리는 ‘한해를 거름’이라는 뜻이겠는데,
한 해는 과일이 많이 열리고, 다음 해에는 적게 열리는 격년 결과(隔年 結果)를 이르기도 한다.

 

 

박노해.  본명 박기평.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의 결성에 끼여들은 그의 이름 ‘노해’는 ‘노동해방’을 가리키는 말이라면서

“저런 불순분자는 죽어 마땅한 줄로 아뢰오”로 사형을 구형하였지만,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인혁당 관계자’들처럼 비명에 참살 당하지는 않았다. 
1984년에 ‘얼굴 없는 시인’으로 ‘노동의 새벽’을 펴냈다. 
그 시들은 잘라진 손가락을 보면서 소주를 빠는 것말고는 다른 위로가 없는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양심은 있는데 행동하지 못하는 많은 먹물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는 6년의 수배와 도주, 8년의 수인 생활 끝에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 박노해의 ‘전향’을 두고 ‘거짓 선지자가 된 전직 혁명가’라는 비하가 자못 기세를 올렸다. 
그는 변절자일까? 
김지하가 ‘율려’인지 하는 ‘벙거지 시울 만지는 소리’를 낼 때에도
“야, 사람이 망가지면 저렇게 되는구나”라는 시선으로 쳐다본 이들이 많다. 
왜 그럴까?  ‘체제 개혁’이 너무 막중한 과업이라 ‘생명운동’으로 나아갈 수 없단 말인가?

 

‘잘 살기’로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정당한 분배’일까? 
생명 존중, 진실의 회복, 사랑의 증대... 그런 것들은 유한계급의 게으르고 위선적인 구호일까? 

물음표 그만 붙이고...

 

그의 ‘해거름’이라는 시를 보자.
(그 동네에서는 그렇게 말한다고 그러면 할 말 없다.  그러나, 표준어로는 ‘해거리’라 해야 할 것이다. 

‘해거름’은 틀린 말이 아니고 다른 말이다. 

저물 녘, 해는 졌으나 사물을 구별할 만큼 빛이 남아있는 때를 가리킨다.)


 

그 해 가을이 다숩게 익어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이웃집 감나무를 쳐다보다가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름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 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거름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 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 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징징대지 않았다
땅 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어머님은 가을걷이를 마치신 후 감나무 주위를 파고
퇴비를 묻어주며 성호를 그으셨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 굽혀
땅심과 뿌리를 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하게 해거름을 잘 사는 게
미래 희망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며
고개 들어보면 절망일지라도
허리 굽혀 들여다보면 희망이라고...

 


 

왜 그 시가 내게 다가오게 되었을까? 

끈 떨어진 연처럼 별 볼 일 없이 된--밤하늘을 쳐다보는 적이 많아, 실은 별 볼 일이 늘어났지만--

나를 찾아온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엽서일까? 

 

    해거름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 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진짜 이유?  나 지금 해거리 중이야. 
열매가 없는 해였지만, 우습게 보지 마. 
가지 많이 치고 달린 게 없으니 꼴이 좀 그렇지만,
두고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