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좀더 많아야

 

상(償)! 

만국기 휘날리는 대운동회 날, 그 ‘상’ 자 찍힌 공책 한 권을 타자고 우리는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달렸다. 

달린다고 다 타는가? 

더러는 달리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진 아픔보다도 등외가 되고 말았다는 슬픔을 삼키기도 했다. 

물론, 끝까지 달렸어도 먼저 들어온 자만 상을 받았지만. 

 
대통령상. 

‘상’ 자 앞에 붙은 말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웬만한 재간이 있다고 받는 것이겠는가? 

문인들이 한때 ‘신춘 문예’라는 등룡문을 거치듯이,

화가로서 국전에서 수상한다는 것은 확실한 입신임에 틀림없다. 

 

박길웅이라는 화가는 1969년 국전에서 최연소의 나이, 비구상화로는 최초라는 기록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박경란이라는 여자는 비행기에서 살포하는 비라에서 그의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아, 그가 내 남자여야 하는데...”라는 생각--그런 황당한 발상을...--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 전차--지하철이 아니다.  4.19 전에는 경성전기가 종로, 을지로 등에서 전차를 돌렸지--, 버스,

등에 올라온 앵벌이들은 너, 나 없이 “저는 6.25에 조실부모하고...”라는 대사를 읊었다. 

박길웅이 그랬다.  그래서 고아원을 전전했고,

자라서는 주먹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몰라도 건달 내지 양아치 쪽으로 몸을 담은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대통령상 수상 화가가 되었으니,

그런 명예에 따르는 벌이의 수준이 향상되는 부상도 컸을 것 같은데,

그 후 몇 년을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왕년에는 현실보다 더 비극적으로 설정한 가상공간에서 좌절과 절망을 과장된 몸짓으로 겪는

예술가들이 더러 있었는데, 박길웅이라는 자가 그랬다.  술을 들더라도 줄이 끊어질 때까지 마셔댔고. 

그러다가 간암으로 죽었다.  서른 일곱의 나이로.


아, 그 여자?  (지금 소설 쓰는 것은 아니다.)  드디어 성공했다, 결혼에(황당한 꿈은 금빛 날개를 타고...). 

그가 열 번째 개인전을 하던 양지화랑에서 1976년에 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년이나 같이 살았는가.  미처 혼인신고도 하지 못했던 때에 남편은 갔다. 

시어머니와 딸을 남기고.  그때 그녀 이십구 세.


남편의 장례식이 끝나자 화상들이 몰려왔다.  그림 한 점에 집 한 채 값을 불렀다. 

“화가의 재능은 모든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는 이유로 팔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보관한다면, 그게 무슨 공유? 

198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남편의 작품 80여 점을 기증했다.  수백 억 원 가치라고 그러대, 난 잘 모르지만. 

천여 점에 이르는 소품, ‘미완’ 및 창작과 관련된 도구, 사본 등을 위탁 보관케 했고.


나중에 보니, 미술관에 전시 혹은 보관 중인 그림이 도난 당하거나 훼손되기도 했다니...


그녀가 그 후 어떻게 살았는지, 신파조로 나갈 것은 없으니, 요 정도만 밝히자. 

동동구리무 한번 제대로 찍어보지 못했고, 삼천 원 이상 가는 옷은 사 입지 않기로,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없이 살았다고. 

그래도 교사를 하며 24평 자리 주공 아파트 하나는 장만했다고.


박길웅이 절세 기재(絶世 奇才)라는 얘기와 더불어

“박제된 천재를 아시오”라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려는 것도 아니고--그만한 이들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무슨 순애보를 소개하자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꼭 막힌 여자가 다 있냐?  더도 말고 딱 한 점만 팔아도 되잖아?


그 ‘딱 한 번’이라는 게 그렇다. 

‘눈 딱 감고 단 한 번만’으로 뚫린 구멍 한 개로 지킬 만한 것이 다 새어나가더라. 

그래서 ‘딱 한 번’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도덕이나 인격은 원칙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일찍이 김지하는 미완성 서사시 ‘장일담’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누어 먹는 것.” 

밥을 나누어 먹듯이, 모두 하늘을 공유하며 같이 보듯이,

“화가는 그림 그리는 순간에 행복한 것으로 충분하고,

예술적 재능으로 생겨난 결과물은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라는 ‘원칙’이

먼저는 박길웅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있었다. 

작품이 고가에 팔림을 예술가에 대한 대접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구나.  수요자 쪽에서가 아니라 장인이.


그녀 자신도 개인전을 열 번 가졌고, 오십이 지나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배워 ‘비트아트’ 쪽으로 나간다고.


에이, 바보 같은 여자가 성질나게 만드네. 

그런데, “그런 바보들이 조금만 더 있다면...”이라는 바람이 점점 진하게 피어오른다.  

그 옛날 아브라함은 소돔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의인의 숫자’를 가지고 흥정했는데,

이 세상 망하지 않으려면 절대수의 바보가 살아남아야 되겠다. 

‘멸종 위기’로 지정하고 보호할 수도 없고.  

 

(주: '사실'에 관해서야 주간지 기사 정도이지만...)

 

 


(이게 뭐지, 'Black & Black'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