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그거
차린 거 없이 돈만 들었다고 그러면 먹은 거 없이 폐만 끼쳤다고 받아넘기잖아?
그러네, 앵두 그거 들어간 건 없는데 티만 내더라는.
보기는 좋더라만, 씨는 크지 붙은 살은 별로지, 맛도 그런데
먹고 나서 시치미 떼지 못할 만큼 물들더라고.
“흉하다는 게 아니고 한 철에 피는 다른 꽃들에 비해서 좀 떨어진다”는 말
女에게 “넌 왜 딴 애들처럼 잘 빠지지 못했냐”는 말과 같은 거니까 맞아 싸지.
근데 앵두꽃, 혼자 피었다면 모를까 그때 이런저런 꽃들 같이 필 때니까 자연스레 비교되어 얘긴데
좀 떨어지긴 하더라.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삐끼지 말게. 용모 때문에 손해 본 적 있다는, 또 미디어에서 '여신강림'이니 하는 애들 별로야.
난 네가 좋다니까.
양동 관가정이었던가-아무 데면 어때- 그때 이미 볕이 따갑던 때라 땀이 물줄기로 흐르던 날
석류꽃 떨어진 땅에서 고개 치켜드니까 빽빽한 초록잎들 사이로 불긋한 것들, 헤쳐 보니 앵두알이 다닥다닥.
그런 돌림노래 있었어.
앵두가 익었어요, 맛 존 앵두를 팝니다, 한 사발에 십원요, 싸구려♪
싸지는 않고 한 사발에 오천 원, 쭈그렁 마른 밤(乾栗) 같은 할매가 길가에 펴놓은 것
“낙과 주워다 파는 거 사먹으면 안돼요” 그러더라마는, 그냥 못 지나가겠어서...
엥, 무슨 맛? 맛 들지 않은 걸 돈 아까워 털어 넣고 탈났지.
그냥 보고만 “아 곱구나” 그러면 되는겨?
앵두를 오래 먹는 법은 따먹지 않는 거다
한 주먹 우물거려도 앵두씨나 가득할 것을
싸돌아다니는 닭들 목구멍이나 막히게 할 것을
툇마루에 그림자 하나 앉혀놓고 눈으로 먹는 거다
보리알만해진 눈곱 곁에 앵두알 눈동자를 지우는 거다
눈동자 속으로 날아드는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받아먹는 거다
앵두 뺨을 훔치는 소만 망종의 달빛까지 핥아 먹는 거다
앵두 뺨과 앵두 이파리의 솜털이 내 귓불에도 돋아나게 하는 거다
그리하여 달빛 앵두인 양 날 훔쳐보는 사람 하나 갖는 거다
나 몰라라 슬그머니 앵두 이파리 뒤쪽에 숨어
혼자 날아온 새처럼 깃이나 다듬는 거다
처음 만나는 눈길인 양 쌍꺼풀만 깜짝이는 거다
돌아앉아 앵두가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나직이 우는 거다
-이정록, ‘보리앵두 먹는 법’-
그래,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고 다 먹을 건 아니지.
앵두 나올 때 맺히던 석류 때 되면-달린 채 몇 달 가야지?- 익어 따게 되는데
어허 그놈 육덕진 게 꽤나 그럴 듯한데
{딱 수류탄 무게, 하긴 石榴 같다 해서 榴彈이라 했겠다}
벌리면 더 예뻐, 가지런한 잇바디에 촘촘히 박혀 반짝이는 보석 같구나.
그걸로 밥은 안 될 것이다.
몸에 좋다는 것, 배부른 다음에 가외로 먹는 것일 터.
여자에게 좋다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내가 처리할 폭탄.
토핑 떼어 먹고 난 다음의 피자 껍질이 아니고...
앵두, 석류
꽉 찼으니 실속 없다고 그럴 것도 아닌데
살도 없지 발려 먹기도 힘들지, 그래도 참게 맛좋다 잖니?
맛으로 먹고, 그도 아니면 약으로 먹고
약은 무슨... 보기는 좋으니까.
그도 아니라면... 얽힘의 추억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