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계(色界)
시는 종교도 도덕도 아니니까 설교는 그만 두게.
시는 악도 僞惡도 아니니까 가리지 않아도 되고 싸고 싶다고 함부로 내놓아서는 안 되네.
시는 다 보고 아는 것들을 말 안 한다고 고발의 사명으로 나댈 것도 아니지.
아니라고 할 것도 아니니 마음대로 하게나.
시는 시니까.
그저 조금은 가리고 많이 줄이고 변장은 하지 말되 화장은 했으면~
색깔 얘긴데, 나 三原色 좋아하고, 그것들이 섞인 이차색도 강렬한 한 다 좋아.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 하나하나 다 좋고, 그것도 색이라면 흑백까지도 좋아.
섞여서 흐릿해지면? 그래도 트릿하지 않더라.
선명, 투명, 발광, 강렬하지 않아 뭐라 불러주기가 그런 것들은?
그건 그것대로 다 좋더라고.
Fifty Shades of Grey, 보지 않았으니 뭐라 할 건 아니지만
‘쉰 가지 그림자’로 옮기다니? 아휴, 아니잖아...
한 이름으로 부를 색이라고 해서 다 같지가 않잖니, 色調는 가지가지.
노랗고, 누렇고, 샛노랗고, 싯누렇고, 노르스름하고, 노리께한 것들을 그저 ‘yellow’라고 하다니.
노랑 좋다고 그 여러 색조를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기분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는 게 달라질 수도 있겠네.
그래 뭐 유채꽃 곱지, 그렇지만 볏짚 빛깔도 좋고, 그 왜 공중변소 변기에 낀 더께는 어떻던?
聖人의 光背보다 더 거룩한 등잔불빛이 밝히는 작은 면적도 그렇고.
나 흰 빛도 좋아하는데
Plumeria까지는 멀고 박꽃, 메밀꽃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창호지, 막걸리 색깔까지 백색으로 치고
거기다가 입에 담기 좀 그런데 구더기, 고상한 표현으로 도자기색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 포함해서 다 좋아해.
자, 그런데, 다 좋아하듯이 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사랑은 일차적으로 선택 아닌가?
대상의 무차별, 보편화는 神이 사람에게 베풀거나 聖人이 나누는 施惠的 사랑에서나 가능할까
衆生이 짝을 만나 나누는 사랑에서는 능력과 자원의 제한과 다각관계에서의 갈등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어려운 얘기이겠네.
그 중에 일부라면... 그러니까 보통 수컷의 막연한 바람(願望)처럼 힘닿는 대로 바람피우기?
그게 進化生物學的 觀點으로 변호한다고 해도 아직 陪審員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하더라고.
그리고 딱히 책임져야 한다는 도덕적 부담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랑은 아낌이니까, 돌봄이니까
여럿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겠네.
꽃밭에서 이 꽃 저 꽃 다 예쁘니까 “아휴, 어쩌면...” 그랬지만
꽃을 좋아하듯 그대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대도 꽃처럼 아름답지만
내가 길렀기에 아름다워진 거네.
懇切함과 精誠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지 못할 수도.
죽지 마라.
-Maui 공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