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이라는 아이의 어머니

 

     

 

 

열여덟에 시집 와서 열아홉에 그를 낳고 갓스물에 죽었으니,
어머니가 그에게 뭘 해주었다고 기억날 만한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어머니보다 두 배 이상 산 나이에 어머니 산소에 가서 눈물 뿌렸다. 
이하 정채봉의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다.

 

 

    하늘 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

 

 

기억에 없는 어머니는 원형적 의식으로 똬리 틀고 있는 구원(久遠)의 여성상일까?  
정신 없는 여러 차례의 연애 끝에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이끈다”라며 
머리 긁는 괴테의 변명이 없었더라도, 
“그런 게 있어, ‘마돈나 나의 침실로’ 같은...”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을 터이다.

 


어머니를 오래 알지 못했기에 그는 아이로 남을 수 있었을까?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마 18: 3)
그는 돌이킬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어린아이였으니까.
바울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 11)라고 그랬지만.
그러니까, ‘childlike’와  ‘childish’는 전혀 다른 뜻이겠는데,
바울, 당신은 어린아이일 수 없었지.
(맘에 안 든다고 뭘 어떻게 하겠냐만.)

 


Second naivete! 
세속의 신산(辛酸)을 경험한 후에 양념 없이 먹거리를 받을 수 있는,
아주 달지 않아도, 그냥 수수깡쯤 되어도 즐겨 빨 수 있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마음이랄까,
그렇게 받아들이자는 것.
흐릿하고 미적지근한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시시한 일들에 호들갑 떨면서,
날이 저물어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뛰어 노는 것.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할 일 다했으니까 쉬는 것.
굳이 선사(禪師)나 성인(聖人)의 깨달음이랄 것도 아니지만,
그냥 다투느니 지는 것도 괜찮을 듯 하고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가치 있음을 아는 것.
(그게 놀기 위해서는 일해야 함을 몰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잖아?)
  

 

아, 나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                                                                            
정채봉은 어머니 곁으로 갔다.                                                              
‘스무살 어머니’라는 책이 나중에 나왔다. 
거기 있는 한 갈피 글을 옮긴다.
(산문인 듯 실은 것을 행을 나누었다.)


    자신의 한 때를 뒤돌아보며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저 나뭇잎을 보십시오.

 

    저들에게도 
    꽃보다 찬란하다고
    칭송 받는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저렇듯 무료합니다.

 

    자신이 희생되었다고
    원통해 하는 사람은
    저 나뭇잎을 보십시오.  

 

    나무를 위하여
    한시도 쉬지 않았던 저들은
    ‘줌’ 자체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미운 얼굴을 보이는 사람은
    저 나뭇잎을 보십시오.

 

    떠나면서 오히려
    단풍으로 치장하는 저들이 아닙니까. 


    이제 저들이 집니다.

    그러나 저들은 지는 것으로
    생을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마른 몸이나마 흙으로 묻혀들어
    한 줌 거름으로 나무 밑에 마저 가길 원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뭇잎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
    무겁고도 큰 존재가 아닙니까.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상실’을. 

 제게서 뭐가 떠나서일 뿐만 아니라 저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는 것을. 

그러지 않으셨던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 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