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만종과 단원의 풍속도 (인민예술 2)

 

살바도르 달리라고 아주 잘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보기에는 밀레의 ‘만종’이 꼴 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그 그림에 대하여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을 내리기도 했고--젊을 때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이 해보는 소리--,

그림의 기도하는 양주의 발 켠에 놓인 바구니에 어린아이의 주검이 있을 터인데,

그렸다가 지웠다면 엑스레이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수선떨기도 했다. 

 

실은 달리가 떠들어대기 전에, 아니면 그 후에 힌트를 얻어 누가 창작했는지 분명치 않은데,

이런 얘기가 전해지기는 한다. 

애초에 부부의 발 밑에 있는 바구니 속에는 씨감자가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하던 아기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고.  

아기가 춘궁기--흉년이라 하든지--를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자,

밭에 그 아기를 묻기 전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 그림을 보게된 친구가 충격을 받고는

“그래서 되겠냐?  그림이란...  예술이란...  사회 고발도 아니고...

호(好)와 쾌(快)의 감정을 유발하는 것인데... ” 식으로 충고를 했고,

밀레가 그 충고를 받아들여 개작하게 되었다는 얘기. (믿거나 말거나.)

 

 

 

  

밀레에게 삐딱한 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종’과 더불어 가을걷이가 끝난 벌판에 쪼이는 햇볕과 노적가리 등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삭줍기’라는 그림만 해도 그렇다. 

그 그림을 보면서 ‘전원 교향곡’과 어울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뭘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은 분노가 담긴 고발이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는. 

뭐가 문제냐고? 

노적가리가 쌓이고, 추스르지 못한 단이 널려 있고, 곡물을 바리로 나르는 수레가 있고,

감독이 말 타고 지켜보는 벌판에서

해진 옷을 입고 싸라기를 줍는 여인들이 전면 배치되었다는 구도에 주목하라. 

뭘 좀 줍겠다고 꾸부린 허리는 영 펴질 것 같지 않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하지만,

제 땅이 없는 농투성이 아낙네로 이어온 삶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는지... 

 

밀레 자신은 나중에 대훈장도 타고 화단의 원로로 대접받으며, 끝이 좋은 삶을 살았다.   

 

사람들은 어려운 시절에 약간은 혁명가적인 소질을 반짝 나타내기도 한다. 

형편이 풀리면? 

요즘 쓰는 말로 수구꼴통, 고전적인 용어로는 ‘reactionary’가 되고 만다. 

마틴 루터는 제후들의 보호를 받게 되자 ‘농민전쟁’을 일으킨 기층 농민들을 저주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때 이러저러한 (좋은) 생각도 품었고, 이러저러한 (옳은) 일도 했다”는

그들에게 얽힌 미담으로 사람들을 기억하자.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거나 33인 중의 하나였다는 사람들에게

‘변절’의 책임을 물어 친일매국노라는 딱지를 붙이지는 말자는 얘기.

 

.....중간에 ‘반동’이라는 말이 나와서 곁가지를 치게 되었다. 

혁명 동지에 대하여 ‘반동분자’라고 부르기는 좀 뭣할 것이다.

(예전에 최고회의 의장은 그의 동료들에 대하여 ‘반혁명 세력’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그래서 ‘수정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숙청하게 된다. 

그런데, ‘ Revisionist’야말로 진정한 혁명가가 아닌가. 

기존 견해를 개혁하면서 자기를 초월해나가는 것이 Perpetual Revolution이다.....

 

 

 

 

단원 김홍도는 중인 출신이지만 양반 못지 않게 살았고,

벼슬도 하고, 왕을 근접거리에서 모신 화원이었으니 서양의 계관시인 못지 않은 영예도 누렸다. 

 

밀레도, 단원도 풍속화를 그렸다. 

한쪽은 꼭 고발이라 할 수는 없더라도, 삶과 노동의 고됨을 통해서 체념과 저항의 함수를 표현하려고 했다. 

다른 쪽은?  “태평성대이옵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이었다. 

 

단원의 ‘벼타작’이라는 그림을 보자. 

양반 지주는 비스듬히 자리 위에 앉아 술동이 옆에 두고 곰방대 빨고 있다. 

 ‘놈들 하는 짓’이나 감독하면 되는 것이다. 

그 때에 머슴이나 품꾼, 소작인은 쎄빠지게, 허리가 끊어져라 고생한다. 

그런데, 저들 좀 보게. 

지게짐을 나르는 이나, 낟알을 쓸어모으는 이나, 볏단 채 후려쳐 터는 이들이나 히쭉거리고 있다. 

도무지 ‘고되다, 힘들다’라는 표정이 없다. 

그게 신명일까?  노동의 즐거움?  일과 놀이가 구분되지 않은 좋은 세상? 

그들은 ‘역(易, 逆)’이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길들여진 백성이었다. 

서양 사가의 눈으로 보자면, “한 왕조가 오백 년을 가는 역사에는 흥미가 없는 것”이었다. 

 

 

전세계가 용트림하던 오백 년 동안에 잠자던 나라가 지금은 변화의 급류에 떠내려가고 있다. 

그 “대~한민국”이라는 붉은 악마의 함성과 엇박자 박수,

그리고 걸핏하면 수십만 명이 모이는 광장에서 무슨 희망의 단서를 찾을 수 있겠는지?

민중화가들이 그릴 만한 투사들이 제 자리에 들어섰는데...

수구꼴통, 기득권층이 워낙 뿌리를 깊이 박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