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세상 지나가기(1)
어릴 적엔 그랬다.
그때에야 클라크 선교사가 말했다는 “소년이여, 대망을 품으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크게 써서 책상머리에 붙여 놓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허사가’가 ‘부흥 성가곡 집’에 버젓이 들어가 있음에 분개했지.
...한참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그런 게 아주 괜찮은, 그러니까 은혜로운 가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가사의 내용만큼이라도 깨우친다면,
꼴사나운 욕심부리기나 부질없는 싸움이 없을 것 같은데...
요즘에야 ‘적극적 사고방식’이니, ‘비전(vision)’이니 그래야 귀담아 듣겠지만,
복고풍 발라드에 향수라도 지닌 사람이 혹 남았겠는지?
장장 12절로 이어지는 것을 열나게 부르고 나면, 종이 땡 울리며 ‘부흥 성회’가 시작되었다.
1.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4. 인생백년 산대도 슬픈 탄식뿐 우리 생명 무엔가 운무로구나
그 헛됨은 그림자 지남 같으니 부생낭사 헛되고 또 헛되구나
5.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라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8. 요단강 물 거스릴 용사 있으며 서산낙일 지는 해 막을 자 있나
하루 가고 이틀 가 홍안이 늙어 슬프도다 죽는 길 뉘 면할소냐
10. 땀흘리고 애를 써 모아논 재물 안고 가고 지고 가나 헛수고로다
빈손 들고 왔으니 또한 그같이 빈손 들고 갈 것이 명백치 않나
11. 모든 육체 풀같이 썩어버리고 그의 영광 꽃같이 쇠잔하리라
모든 학문 지식도 그러하리니 인간 일생 경영이 바람잡이뿐
12. 우리 희망 무엔가 뜬세상 영화 분토 같이 버리고 주님 따라가
천국낙원 영광중 평화의 생애 영원무궁하도록 누리리로다
찬송가 가사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지.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의 곡에 붙여서 부른 것으로,
“죄의 깊은 잠과 뜬세상의 꿈을 어서 깰지어다 나의 친구여.”
“전능하신 여호와여 나는 순례자이니”라는 찬송의 옛 가사는 이랬다.
“역려과객(逆旅過客) 같은 내가 힘이 부족하오니.”
“지금까지 지내온 것”의 곡에 붙은 가사는
“뜬세상에 손(客) 노릇도 잠시 동안뿐일세.”
아직까지 애창되는 것으로는
“괴롬과 죄만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를 꼽을 수 있겠다.
인생이 뭔데? 그런 정서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무’의 terror 때문에 종교가 필요할 테이고.
운보는 왜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