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파서
나 아파, 몹시.
“응 어디가? 그래서 어떡해...” 쯤으로 나오면 관심 끌기에 성공.
그러고는 딴전.
아주 춥다며, 눈도 많고?
여긴 지난주에 28도-섭씨!-까지 올라갔다.
아내가 꽃가루알레르기로 고생하기 시작하면 봄이 온 건데
보통은 삼월 초, 올해는 한 달 이르게 왔네.
눈물, 콧물, 재채기, 두통... 보기도 안됐지.
“당신은 이런 고통 모를 거야. 앨러지 없음이 고마운 줄 알아야 돼.”
제 몸 아프지 않다고 남의 고통 몰라주는 이가 어느 날
응? 가슴이 답답하네... 왜 그러지?
해서 두 달 전부터 복용해온 약의 부작용 고려, 일단 끊기로.
그 좋아하는 커피, 끊지 뭐.
{좋은 것이라고 매이면 그것도 중독이니, 그리고 모든 중독은 나쁘거든.}
안 되네. 뭘까... 협심증? 심근경색 전조?
의사 찾아갔는데... 혈압 정상, 맥박 정상, 심근경색 가능성 거의 없음.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고.
아내는 운동을 심하게 해서 근육통일 거라고.
운동을 심하게? 짱? 狂?
바캉스 철 앞두고 수영복 차림 부끄.. 상황을 고려하여 급히 몸만들기? 아니야.
돌아다닐 때는 답답하긴 해도 뭐 통증이랄 것까진 아닌데
누우면, 아야... 그러다 잠드는가 싶더니 또 아야...
심장이 압착기에 눌리는 것 같다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고.
일어나 앉으면 좀 낫거든, 해서 이 짓 하고 있는 거라고.
‘가슴 아프다’는 말
남의 아픔에 동참하여 저도 슬프다거나 혹 배신의 쓰라림을 표현하기도 할 텐데
그 경우에 ‘가슴’은 마음.
많은 경우에 ‘심장’, 더러는 싸고 있는 뼈대, ‘胸廓(흉곽)’을 가리키기도 하고
뭐 ‘착한 슴가’니 하며 인공적으로 꾸미는 부분을 의미하기도 하지.
{희랍어 카르디아, 영어 heart도 심장이나 마음, 양쪽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네.}
나 가슴 아파. 그건 심장.
나 때문에 가슴 아픈 사람 혹시? 마음이라고?
閨情이니 閨怨이니 하는 말처럼 그런 게 있는 줄은 아니까
“우린 그런 걸 몰라”로 해결될 게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달래겠는가?
사정이 그런 걸.
“남자와 여자는 달라” 그러고 입맛만 다시는 거지.
“견딜 수 있을까”, “기다리면 안 될까” 그러는 거지.
‘妓女’라는 말 곱게 들리지 않지만
타고난 끼와 익힌 솜씨가 있는데다가 제 감정을 그나마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여염 여인은 시 짓기도 못했다지}
또 옮겨도 괜찮은 신분의 사람 얘기라서 이리저리 퍼지다 보니
이런저런 노래와 이야기 남긴 예술가로 전해진 詩人, 歌人이겠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김억 시인에 의해 다소 과하게 옮겨진 薛濤(설도)의 ‘春望詞’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꽃피어도 지는 꽃 함께 슬퍼할 이 없어”로 시작해서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눈물 줄기 아침 거울에 드리운 꼴 봄바람은 아는가 모르는가”로 맺는 노래
1300년 후에 카톡 메시지 보내는 여인이라고 모를 情操는 아닐 것이다.
조선 여인 李媛은 그랬고... (‘閨情’)
有約郞何晩 약속해놓고 임은 어찌 늦으실까
庭梅欲謝時 뜰에 핀 매화 떨어지려하네
忽聞枝上鵲 문득 가지 위 까치소리 듣고는
虛畫鏡中眉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보지만
남자들은?
달리 할 말 없어 속으로 “나는 뭐 목석인가?” 그럴 것이다.
남자는 다 그래.
왜 그런 말 있었지, 무슨 책인가에서 나온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그렇더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니까.
군대 때웠지만 염치없이 좋은 보직이라서-비 같은 연예사병은 아니었지만-
한 주일에 한번은 외출 나올 형편이었는데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와서 눈 붙이고는 새벽에 귀대한다고 나서면
어머님이 그러셨다. “집이 여관이구나.”
막내가 모처럼 다니러 왔다. 나름 휴식과 치유가 필요했겠지.
아내는 들떠서 먹일 음식 준비해뒀는데, 허 여자친구랑 돌아다니고 그 집 가서 먹고...
그런 거구나.
돌아가기 전에 식구들이 같이 하는 게 뭐 있어야지.
무슨 특별한 일을 만들 것도 아니어서 같이 숲이나 걷기로.
동북부는 폭설과 강풍으로 비상사태라는데
여긴 그제 밤 한 시간쯤 폭풍우가 몰아대더니, 그런 일 언제 있었냐는 듯이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숲길 아직 젖었는데... 젖지 않는 마음?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 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나희덕, ‘젖지 않는 마음-편지 3’-
너는 왜 울지 않고?
이 시간에도 그런 사이들 있을 거라.
찬비 내리고,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젖지 않는 마음, 낯선 편지...
그게 다가왔다가 지나가버린 경치를 백미러로 보다가 아주 안보이게 되는.
안보이면 아주 없어진 걸까?
마음 접으면 친숙한 사연도 해독 불가의 낯선 기호가 되고 말까?
헤어지길 잘 했다 그럴 건 아닌데
나처럼 젖지 않아 야속할 것도 없고
돌아와 휘젓지 말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래도 높이 솟아 반짝인다면 그윽한 시선으로 쳐다봐줄?
아프다고 일어나 앉더니 할 짓 없어서...
아주 소설을 써요.
Security checkpoint 안으로 사라진 아들을 좇는 멍한 시선
- 임자, 그만 돌아갑시다. 외국 가는 것도 아니고...
- 카타리 카타리, ()()한 마음...
- 가슴 아픈 건 난데...
Schubert, 'Notturno' (Rubinstein T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