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2)
순정
좋은 세상이니 제 방에 앉아 바다 건너오는 소식을 듣기는 하지만,
제가 뭐 분위기를 아나요, 방화(邦畵)를 볼 기회가 있겠어요?
하니, 그냥 들은 얘긴데,
뭐, ‘댄서의 순정’인가 하는 영화가 나왔다면서요?
앳된 소녀의 청순 이미지를 상품화하기 이전에
‘뭔가 있을 것 같은’ 제목 자체가 어느 정도의 흥행성을 사전 보장받았겠네요.
그게 그러니까, 그렇고 그런 지난날의 음습함,
뭔지 모르면서 “그래선 안 돼지” 하지만,
묘한 호기심, 향수, 못해보고 세월 날린 사람에게는 아쉬움 같은 것으로 다가오는...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처음 본 남자 품에 얼싸 안겨
푸른 등불 아래 붉은 등불 아래 춤추는 댄서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소폰아
(내가 뭐 이런 가사를 필사해야 하는지 쓴웃음 짓고 있지만,
‘꽃과 나비’의 쌍무지개 뜨는 언덕 같은 함수 그래프(圖式)를 말로 표현하려니까...
예쁘게 봐주세요.)
‘순정(純情)’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사심이 없는 감정”이겠는데,
거기다가 덕지덕지 붙여본다면...
뭘 잘 몰라서 속거나 손해만 보지만,
그것도 운명이려니 여기고 넘어가거나 자신만 탓하는...
(그럴 이유도 없고, 정말 짜증나게 만드는 거지만)
자기를 희생해야 사랑인 줄 아는...
뭐 그런 것들, 그러니까 순정‘소설’이 먼저 있고 거기서 뽑아낸 순정의 경우.
그럼 ‘갈대의 순정’은 뭐지?
말없이 가신 여인이 눈물을 아랴 가슴을 파고드는 갈대의 순정
못 잊어 우는 것은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마라 아 아 아 갈대의 순정
다 훑을 것은 아니니까, “열아홉 살 섬 색씨가...”까지 안 가도 되겠다.
뭐냐고? 순정...
(1) 다 줌
(2) 잡지 못 함
(3) 잘못 되는 사랑마다 내 탓으로 돌림.
맥빠지지만, 여기서 끝날 얘기가 아니니까...
꽃과 나비
('나비 전문' 남계우의 화접, 호접)
꽃은 땅에 묶여 있다.
나비는 공중을 날아다닌다.
꽃은 나비를 따라갈 수 없다.
나비는 한 꽃에 머무를 수 없다.
둘의 관계?
“서로 도우며 살자”가 아니고,
“그대 없이는 못 살아”이다.
피는 것이야 제 스스로 할 일이지만,
나비가 없으면 열매 맺지 못하니까,
그렇게 되면 재생하지 못하니까,
꽃은 향기와 빛으로 나비를 불러야 한다.
아름다운 자태와 화려한 색깔이라...
뽐내는 게 아니고, 경염(競艶)도 아니고,
저 살자고 하는 짓.
나비가 꼭 ‘그 꽃’에 들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흠, 그냥 지나가도 될 일이지만...
‘재생(再生)’이지 ‘갱생(更生)’이 아니다.
‘환생(還生)’? 그건 말도 안 되고.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소망사항까지 뭐라 할 수는 없으니까...]
꽃의 번식, 종족 보존, 재생,
예쁜 말로 해서 perpetuation(永久化), 불멸(immortalization)의 노력,
나비가 없이는 그런 게 가능하지 않다 치고...
나비는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던가?
꽃이 없다?
당장 생존이 가능하지 않을 텐데.
그 날을 넘기지 못할 존재가,
날마다 끼니를 걱정하는 주제에,
무슨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겠냐고.
하니까,
꽃은 나비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이네.
아쉬운 정도로 치자면,
나비가 꽃에게 빌어야겠네.
아무렴, “밥 먹어라” 하겠니?
엄숙한 표정으로 “아이 만들 때 되었음” 하겠니?
해서, 필요 때문에 흥정하는 것이 아니고,
유희(遊戱)로 초대하는 것이다.
꽃밭에서 쉬어라 나비야
친구이니까 안위를 염려하게 되고.
그리 가지 말아라 거미줄에 걸릴라
이리 이리 오너라 나비야
삶이 거룩하다고 해서
희롱(戱弄)이 배제될 이유는 없다.
문화는 ‘의무’라기보다 ‘놀이’일 것이고.
꽃이 손짓했고 나비가 찾아왔지만,
그냥 충돌해서 찢기거나 부서지지는 않더라.
나비의 정성스런 애무에 먼저 마음이 열리면,
다음에 꽃잎을 열어 내실로 맞을 것이고.
“비밀에 가득 한 길은 내면으로 향하고 있다”(노발리스).
그건 비밀도 아냐, 암호도 아냐,
카피라이터의 재주가 빚어낸 촌철살인(寸鐵殺人)도 아니라니까.
꽃이 나비에게.
나비가 꽃에게.
Victor Hugo의 'Les Chants Du Crepuscule'에 나오는
"꽃과 나비"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네.
탐닉(耽溺)이라도 잠깐.
나비는 떠날 줄 안다.
“정 주고 가지 마” 할 것 아니고,
꽃은 보낼 줄 안다.
그대는 왔다 떠나네.
“남잔 다 그래”로 나오면,
“여잔 더 그래”로 받을 것이니.
뭐 이리 할 말이 많은지, ‘다음 호에 계속’이라고 그러기도 미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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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 있는 영랑 생가에 들렸더니, (허유, 모란도)
모란이 피기까지는 한참 걸릴 꽃샘 추위 때였는데
어인 일로 나비는 나왔길래 물었다.
“모란꽃이 곱다 해도 벌 나비가 찾지 않는다던데?”
저만치 간 나비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한 마디 떨어트렸다.
“그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