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4)

변명

 

애초에 잘못 내지른 것이었는데,
지워버릴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온 거야.

 

그 “뜻의 역사”라는
신자 사전에 수록된 말로는
제 책임을 가릴 수 없는 것,
그럼 그냥 실려왔다는 얘긴가.

 

공연한 짓이 길어졌어.
입장료가 아까워
재미없는 구경 판에 끝까지 남아있기.

 

첨 보는 것도 아닌데...
나비 한 쌍 노니는 걸 보고는
팔을 뻗었지.
“흥, 너희들은 좋구나.” 심통 나서
잡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아, 고놈들이 안 가네.
“아무렴 잡힐까봐”라는 놀림.
그렇게 따라다니다 보니
어리얼씨가 길어졌다.
축축 늘어져서
하나도 “아싸 호랑나비”가 아님.

 

그래도 주워 담아야지.
폈던 자리는 쓸어놓고 가야지.

 

아, 그리고, ‘장자’니 ‘윤이상’이니 끌어들여
비웃 두름 엮듯 할 것 없겠네.
그런 얘기 아니었으니.

 


의.  있어도 없어도

 

‘나비의 꿈’이라면,
꿈에서 나비를 봄인지
나비가 꾼 꿈인지
분명치가 않은데,
이젠 나도 모르겠네.

 

‘의’를 빼어버리면?
그것은 장자의 꿈(莊周之夢)이었으니까,
‘나비 꿈’(胡蝶夢)이라 해야 되는 건가?
그게, 그 ‘의’라는 말이
‘~이라는’으로도 쓰여진다니까 그러네.
‘사랑의 슬픔’이라면
‘사랑이라는 슬픔’으로 읽어야하니까,
‘지(之)’ 자 붙들고 지지하게 굴면
지질하게 된다고.

 


그게 아닌 것이 그것?  무슨 말이 그래...

 

그게 뭐 노래랄 것도 아닌데,
아무튼 그땐 불렀다.

 

    나는 나요 너는 너다.
    나는 나지 네가 아니다.

 

존재론, 윤리학,... 그런 쪽으로 막 번질 것은 없지만,
적어도 논리학에서는 서양철학의 골격을 이루었거든.

 

A is A, 나는 나야.
두 말하면 숨찬 것을 가리켜 ‘동일율’이라고 그랬고,
A is not non-A, 나는 나 아닌 것(너)이 아니라니까. (누가 그렇다나...)
그것을 두고 ‘모순율’이라고 했다.

 

그것만 알면 된다?
학문하기 쉽구나.
괜히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이라고 겁준 거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예외랄 만한 게 있긴 있었다.
말이 안 되는데,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로 내려온 것이다.
뭐겠니?
그는 정말로 그이며, 동시에 정말로 그가 아닌.
'참 신이며 참 사람이심(vere deus vere homo)'.

 

우리야, 음양이 꼬리 물고 이어가는 태극이니 뭐니 해서,
“그려, 안 그런 것도 그려, 가다 보면 그려,
그런 것 안 그런 것 가릴 것 없어, 그려, 그려”쯤은
씩 웃으며 아는 척 할 테지만,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이성이 반역하지 못했다는 게.

 


접속사를 없애려는 가망 없는 노력

 

혼자 하는 짓이 아니니까
사랑이라면 짝이 있어야 하렷다.

그 중에 소문난 것들: Romeo and Juliet, Tristan und Isolde...
‘와’로 연결되지?
‘와’로 연결한다는 것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뜻.
‘우리’라는 애매함으로 덮어씌워도
“나는 나지 네가 아니다”라는 사실이 부정되지 않더라는.

 

같이 살고 싶음을 어떻게 확인하겠어?
정사(情事).

 

그럼 하나 되던가?
떨어지면 끝.

 

누가 말려서가 아니고,
떼어놓아서가 아니고,
언제나 같이 살 수도 없고,
아주 하나 되긴 더군다나 안될 일.

 

사랑을 이어간다는 것은
절망을 쌓아가는 것.

 

해서...
누가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니고
그냥 눈빛으로 통한 셈인데,
“우리 같이.....”
정사(情死).

 

‘한번에 같이 죽음’만이 ‘영원히 같이 삶’이라고.

 

사랑의 묘약(love-potion)은 늘 죽음의 독약(death-poison)이더라고.

 

알아.  누구나 그런 건 아니라는.
그래서 문명은 이어질 것이고.

 

축복, 건강한 제도: Mr. and Mrs. Kim.

 

                    

 


그만 끝내라 

 

꿈에서 꿈꾸다가 깨어나면
그것으로 된 건지
한번 더 깨야
꿈에서 아주 벗어나는지...

 

나비가 너무 오래 날았다.

 

이슬에 입 맞추고
팔랑거림을 멈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