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요리사 취향이 아니라 손님들 입맛에 따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음식점이라면.
기사식당 보조인 조선족 아줌마가 “셰프라고 불러주세요” 할 수도 있겠고.
“편안하게 읽어도 되는 글 좀 쓸 수 없어?”라고 야단맞고...
잘 될까 몰라.
자는 놈을 깨워서 밥상에 앉혔다.
(아내는 낮에 집을 비운다.
아들은 일하기 싫어 글 쓰겠다는 백수, 닮았다.)
내가 빚은 건 아니고 황해도 김치만두 사다 얼린 것,
국으로 하면 터질까 싶어 지졌다.
누구 솜씬지 참 잘 구웠네,
노릇노릇,
만두피 끝이 아삭하지만 입천장을 찌를 정도는 아니고.
14개를 8개와 6개로 갈랐다가,
아들이 “M-m-m, good!”하는 바람에 두 개를 더 줬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표현도 없는데,
그저 “Good!” 한 마디로 다 됐다.
1958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아버님이 허름한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군만두 한 접시를 시켰다.
“아버지는 이런 거 자주 먹는다, 너 다 먹어라.”
‘종족 보존’이라는 말로 설명할 것도 아니고.
사람 없을 때라, 피아노 쳐가며 크게 불렀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좀... 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