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백의 노인들

신기료 장수 타타르 할아버지

 

달라스 북쪽의 데니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구두 수선을 하던
52세의 Mike Tatar씨가 이락에서 죽었다. 
특기사항이라도? (죽는 사람 많으니까...) 
그는 열 살 때에 아버지로부터 그 기술(?)을 배웠고,
18세가 되자 고향 일리노이주 샴페인에서 텍사스로 내려와서 구둣방을 차렸다. 
청원경찰 같은 일도 해보았지만, 삼십 년 동안 구둣방을 열었으니 그게 천직인 셈. 
그러다가 이락 경찰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은 민간 회사에 취직이 되어
지난 해 7월에 일년 계약으로 이락으로 떠났던 것. 
거기까지 그렇다 치고... 

 

그의 아버지는 91세. 
Walter Tatar씨는 아들이 돌아오면 그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
그동안 가게를 맡아주겠노라고 내려 왔는데, 
아들은 몇 달 후 유해로 돌아와 묻혔다.
그는 살던 곳을 정리하고 아주 왔다.
신기료 장수를 계속하겠다고.

 

 


바이런 경

 

그의 이름이 Byron Nelson이니까 바이런 시인과 넬슨 장군을 연상케 하지만,
그에게 무슨 작위가 수여된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팬들이 전설적인 골퍼 Byron Nelson을 아끼며
‘Lord’라고 불렀다.
이제야 그의 팬이랄 사람들이 남았겠는가,
그도 그냥 Mister이다.

 

그의 나이 93세.

그는 1945년 한 시즌에 열여덟 토너먼트에서 우승했고(PGA 기록),
이듬해에 34세로 전업 골퍼의 삶에서 은퇴했다.
그렇다고 골프계와 아주 단절된 것은 아니다.
내일부터 EDS Byron Nelson Championship이 열리는데,
(EDS 재벌이 후원하긴 하지만) 그가 39년을 연속하여 주관했다.

 

그가 지금 하는 일?  목수.

 

어느 해인가 부인 루이즈가 장에 갔다가
편지꽂이(recipe box)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돌아와서
남편에게 만들어달라고 그랬다.
만들고 보니... 
부인이 예의를 지키기는 했지만,
(미국 여자들은 시원찮은 남편의 소행 직후에도
보통 “Terrific!”, “You are wonderful~”이라고 인사한다.)
그건 누가 봐도 “아니올시다”이었다.
“보고 만들게 하나만 사오구려.” 해서 모델을 구하고는
감쪽같이 뽑아내었다.
내친 김에 스물 다섯 개를 더 만들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돌렸다.
그렇게 시작된 취미였는데,
닭장을 개조한 작업장에서 만들어낸 ‘작품’이 부지기수이다.

 

그는 엉덩이뼈를 대치하는 수술을 두 번 받았고,
때로는 손가락이, 심한 경우에는 팔목이 거의 잘려나갈 뻔한 적도 있지만,
또, 작업장까지 휠체어를 타고 가야 하는 형편이지만,
아직도 목공일을 계속한다.

 

‘물건’이 늘 잘 빠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블 보기도 발생한다.
그래도 그는 ‘perfectionist’이다.

 

있지도 않을, 되지도 않을 것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주의자는
“다음 번엔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better performance)"를
지금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페어웨이를 벗어났을 때에
최선을 다하여 만회하는 사람이다.

 

 

 

 

O mio babbino caro

 

가친도 망백(望百)이시다.
모시지도 못하는 주제에 전화로나 문안드리는데,
늘 고통을 호소하신다.

 

아픔이 어디로 가겠는가,
사는 동안.

 

그러나, 어찌 ‘수즉욕(壽卽辱)’이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