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야 바른 말인데
참이라고 다 착하지 않고, 착하지만 참이 아닌 경우도 있겠는가?
참이란 옳음과 동의어인지, 아니면 옳고 그름을 넘어서는 것인지?
어떤 과부.
남편이 벌어다주는 것으로 살림만 하던 여자인데,
남편이 죽고 나니 뭐 해먹고 살지 막막했다.
생명보험이 지급되어 목돈이 좀 있기는 했다.
시누이가 있었다.
이렇다 할 직업도 없는데, 해놓고 사는 것은 괜찮아 보이던 수완가.
그렇게 살지만, 남편 생전에는 이런저런 구실로 챙겨 가는 일이 많았다.
그녀가 다가왔다.
“언니, 목돈 허물면 까딱수에 다 없어져요. 그렇게 두지 말고, 내게 맡겨요.
예전에 오빠 받던 본봉 정도는 매달 나오고, 원금은 한푼도 줄지 않거든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돌려 받을 수 있고...”
그렇게 가져간 후 두 달 동안은 이자를 가져왔다. 고맙기까지 했다.
그 후... 사업이 잘 안 된다나...
몇 번을 찾아갔다가... 말다툼이 되었다.
“이 X아,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돌려 주냐? 너는 없는 돈을 만들어 줄 수 있니?"
욕만 먹은 게 아니다. 가위에 여러 군데를 찔리고, 머리카락이 뽑히고, 잘렸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돌려 주냐고? 거 말 한 번 잘 했다.
없는 돈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그거야 안 될 얘기지.
말이야 바른 말인데, 바른 말 하는 사람이기에 착한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기에,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진실한가?
정치인, 종교인, 기업인, 노조... 언제 그른 말 하던가?
102 세에 부르심을 입은 외조모.
모시는 게 아니고 다투며 살았는데,
소송 취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건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면...
채송화, 깨꽃, 과꽃, 코스모스, 해바라기를 심은 ‘꽃’밭을 헤치고
파, 마늘, 상추, 등을 심고 오줌을 부으시더라는 얘기.
그 영토권 분쟁 시 내가 하는 말:
“먹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먹을 수 있는 ‘요긴함’보다 귀한 거라고요.”
(말 잘 하네, 한 갑자가 넘는 차이를 뛰어넘어 설득을?)
논쟁을 길게 이어갈 이유가 없으니까...
“어라, 새끄랍다 고마. 말 같은 말을 해야제... 가당치도 않다, 쯧쯧.”
‘야마시꾼’이 ‘참꾼’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정설로 받아들이자면,
그런 사례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하는데...
말들은 참 잘해.
말 같지 않은 말을 할 때는
실실 웃음이라도 흘리지 무게 잡기는.
시끄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