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마로니에는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료...
있으면?
살던 데, 놀던 곳.
다시 안 간다.
‘사람’이 없는 데서 옛 모습 발견하면 뭣하랴.
그렇게 수십 년 찾지 않은 자리를 가봤다.
친구가 연극 보자고 해서.
그렇지, 뭐가 남았으려고...
본관, 구관, 도서관, 운동장, ‘낙산’ 다방 가던 구름다리,
길 건너 함춘원, 분수, 쌍과부집,... 그런 것 다 없어졌고,
마로니에는 남았다는데 못 봤어.
‘학림’은 거기 있는 줄 알았지만 들리지 않았고,
비켜선 ‘진아춘’에선 자장면을 먹었다.
향수? 없었어.
사람이 떠난 자린데 뭐.
그냥 생각나서 얘긴데...
미학 강의 듣던 교실 창문이 열려 있으면
목련 꽃잎, 오동잎이 잠입하기도 했다.
4.19 기념탑 앞에는 꽃나무들이 여럿 있었다.
4월 들어 ‘운동’이 시작될 무렵엔 라일락이 지천이었다.
최루탄이 라일락 향기를 상쇄했지만.
철없는 시절에 그 앞에서 격문, 선언문, 탄원서 등을 읽기도 했다.
그때, 끼여드는 게 내키지 않았는데도 송00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렸고,
손00가 나섰고, 김00가 상대에서 가끔 원정 왔다.
나는 군대 갔다 오면서 뚝 발을 끊었기에 ‘운동권’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지난 삼 월, 그러니 못 본지 37년은 됐겠네,
이름은 ‘애지(愛智, philos-sophos)과'인데,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았던 학생들을 만났다.
치열하게 살았을 텐데,
눈매 선한 소년들이다.
(그러면, 속이는 것 아닌가? 세월, 나이, 경력 같은 것을.)
참 고맙다.
스치고 나서
다시 돌아보고픈
상큼한 것
아까운 것이
없다
노욕(老慾)이 없으면 늙은 거지.
嗚呼老矣是誰之愆 (勸學文 朱子訓에서)
“아 늙었도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이 누구의 허물인고.”
그래, 속이는 거야.
그리우면 그립다고 할 것이지.
사랑하면서
이건 사랑 아니라고
악쓸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