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비 내린 후
겨울비랄 수는 없겠다.
두 주 전에 28도를 찍은 적이 있었으니.
봄은 뚜벅 걸음으로 전진만 하는 건 아니어서 더러 물러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니 어느 새?”로 슬며시 자리 잡더라고.
아직 찬비, 수은주로 치자면? 재나마나 오도겠지.
무슨 근거로 확정적으로 말하는 건데?
그게 GH 급 썰렁개그인 셈인데, ‘비의 탱고’라는 흘러간 노래 알아?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마즈막 작별을 고하는 울음과 같이...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이수복, ‘봄비’)
사실 여기는 한국처럼 모진 추위 있는 데는 아니니까
풀빛 잃지 않고 겨울을 난 것들도 있고 잔풀들도 이미 돋았다.
꽃들은?
수선화, 튤립 많이 폈고, 응? 여기서도 명자꽃을 보는구나.
동네 가로수랄까 꽃배나무 잔가지마다 쌀알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며칠 쌀쌀한 날씨 지나고 나면 하얀 터널을 이룰 것이다.
박태기나무 붉은 점들도 이미 아롱다롱 달렸다.
여러 해 만에 돌아온 동네이지만
뉘 집 남쪽으로 뻗은 가지가 해마다 일번으로 벙글더라는 사실은 기억하니까
한 걸음도 헤매지 않았다.
그 집 다음엔 저 집, 그리고 우리 집 뒤뜰 가운데 나무 순서로...
그런데 여기 나무들은 왜 그래?
잎 안 달고 있을 때도 한나라 시골 동네의 노거수 같은 틀거지를 드러내지는 못해도
풀어헤친 처녀귀신 출몰하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직한 꼬락서니라니! 그러다가...
樹種과 환경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매력으로 뽀대날 텐데
바비인형 같은 터무니없는 비율을 표준체형으로 삼고 비교할 게 아니지.
흉보지 말자. 저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인데 남의 말을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세요.
큰 절 주차장 근처에서 돈푼 주고 구하는 겨우살이,
나무들마다 몇 개씩 달고 있다.
거긴 어떤데?
성급해 探梅에 나섰다가 허탕 쳤겠지.
꽃 아니면 어때?
솔숲에 부는 바람에 날카로운 기운 없는 날
찾는 이 드물어져서 옛길이라 할 만한 델 혼자 걷기.
옛길도 처음 냈을 때는 신작로였을 터, 처음 난 길이 있을 데 있는 제 길.
낙방 선비 귀향하는 걸음인데도 부끄럼 없이 걷는 길.
이맘때면 큰 산 깊은 골짜기에서 얼음장 터지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겠다.
혼자 걸어도 괜찮지만
저음으로 “그죠” 동의하거나 조금 높은 톤으로 “그쵸?” 하며 동의를 구하는 목소리
곁에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