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Sunday (3)

절이 없으면 중이 아닌가?


머물 데가 없으니, 추운 곳에서는 살기가 힘들겠네.


그렇게 헤맸어도,
쫓겨다닌 것이 아니고 이끌림을 받았던 게야.

 


오늘도 나들이 나오듯, 바람 쐬듯,
어슬렁 걸음으로 다가와서
알알이 모여 송이 된다.
한 알이 한알로부터
들숨과 날숨으로 채워지고,
알과 알은 나누면서 더 커진다.

 


보지 않고 믿는 자
 
    뵘보다 들림으로 끌림 받고자

 

    봄이 들음보다
    낫더라 그러는데
    뵘이 거짓인 게
    얼마나 많더냐

 


말씀에 의지하여?   

 

“공부 안 하려거든 밥도 먹지 마라” 그랬더니, “그럼 밥 먹지 않겠습니다” 한단 말이지. 
밥 먹고 나서 공부하는 게 순종이지. 
에그, 자식이 뭔지...

교인들의 순종도 그런 게 아닌지? 
말씀(言)에 기대서는(依) 게 믿음(信)이라고 말은 잘 하더라마는.

 


그만 갑시다  

 

고무줄 끊어진 통치마 움켜쥐고 주저앉은 사람들.
눈 딱 감고 갈아입으면 될텐데.


                 

 

 

없는 사람들, 뼈빠지게 고생해서 내일 들고나올 도시락이나 마련할 사람들이
팔베개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사는 게 다 그렇다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둑’이라고 그러는데,
도매 가격의 두 배를 붙였다고 해서 ‘배로 남기는 장사’이겠는가? 
“밑지고 파는 겁니다”를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어디 남기는 사람 봤냐? 
다 밑지는 장사지. 모두들 안됐어.

 

그렇게 김서방이 화두를 꺼냈다.

 

오래 전에 떠나 강남, 잠실을 모를 이들이 하는 얘기라니--
이서방이 저만 아는 것처럼 “거기 알아?”로 나온다.

 
--1970년대 초에 명동에 ‘본전 다실’이라고 있었어.
그 앞을 지날 적마다
“약간 밑지는 것이 본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먼저 배우고
갖기도 전에 양보부터 했으니...
(말없음표?  “에고, 나도 참, 그러니 이 나이에 모은 것 없이”라는 뜻이겠지.)

 

 

--응, 거기?  문짝에 상평통보(常平通寶)를 그려놨지?
“아~ 왜 안 오나”라는 노래가 나오던 곳.

 

있기에 준다면 시(施)이겠는데,
없어도 준다면 시(侍)이겠네.
없어도 나누면 절로 있음이 되고,
그게 거룩을 모시는 ‘지핌’이 아니겠는가.

그만하면 괜찮은 삶이었구먼.
시시하지 않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