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지 않는 공동체

 

동무는 없다
 
단란가족 하자니까 단란주점밖에 모른다고.
그러니, ‘동무’를 언제 찾겠어?

 


일단 엮어지면
 
“비웃 두름 엮듯”이라는 말을 듣고 어떤 이가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당신이 어떻게 그 말을 알아?”  온, 이거야...  “당신은 어떻게 알아?”

 

‘두름’은 스무 마리를 한 줄에 엮은 거였지?
열 마리라면 ‘갓’이고.

 

온 개 있었는데,
다 흘려버렸다.

 

겨우 한 모숨 모았는데
그것도 꿰자니 쉽지가 않다.
큰손이라면
한 줌만 움켜쥐어도 되겠는데.

 


외로워도 할말 없다

 

존경하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덜 재미없는 일은 없다.
그를 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어려움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가 내 편이 된다면 얼마나 불쾌한가?


그렇게 떨어져나간 사람들이 좋다고 그랬겠는가?

 

난적이란 이기기 어려운 맞수란 뜻이 아니고 상대하기 싫은,
맞붙을 이유가 없는,
그래서 “내가 졌다” 하고는 얼른 피하고 싶은 사람.

 

적의 강세가 나의 약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는 이 섭섭히 맞으며 가는 이 반기며 보내세.” 하고서
내 주변엔 사람 없다고 하면 어떡하자는 건지.

 

키질하면서는
모을 수 없는 것.

 

 
공동체의 원리

 

누가 그랬던가,  본회퍼?


“홀로 있을 수 없는 자는 함께 있을 수 없고,
함께 있을 수 없는 자는 홀로 있을 수 없다.”

 

그분 안에 있음.
당신과 함께 있음.
그들과 더불어 있음.
나의 나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