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인의 산문집
응집, 결성한 것은 때가 되면 분산, 해체한다.
자연현상과 사회현상, 생체와 조직, 어디의 무엇을 봐도 그렇다.
생성과 함께 소멸은 시작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그렇다는 얘기.
슬프긴 뭘, 그런 거지.
달랑 어머님 혼자 사시지만 친정이라고 한 주일 다녀오는 아내를 welcome back, 튤립을 사왔다.
아니, 한 시간도 안 되어 고개 숙이면 어떡해?
곧추서지 않았어도 우아하고, 고상함을 잃지 않은 채 열흘쯤 버텼다.
Cut flower 내다버릴 때마다 비정한 사람 아닌가 그런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꽃이 그럴 것 같긴 해. “속까지 보여주고 싶진 않으니까 꽃잎 떨어지기 전에 내다버려요.”
그건 그렇지가 않네.
고려장? 아니지. 아주 꼴깍! 하기 전엔 곁에 계셔주셔요.
에이, 별로 책 읽고 싶지 않더라.
맘에 안 드는 내용이라면 그런 걸 왜 읽어?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 읽기 전에도 나는 그런 줄 알았으니까 새삼 확인할 필요 없고.
드문드문 좋은 구절 숨어 있겠지만, 예쁜 조개껍질 줍겠다고 모래펄 쑤시기는 좀...
아 이젠 눈도 침침하고 말이지.
뭐 워낙 심심할 때도 있거든.
딱히 유용성을 따져서도 아니고 심심풀이로 그냥 들어본 책
응? 의외로 자미(滋味)있는 거라.
아멘권사처럼 촐싹거리며 “믿습니다, 아멘!” “옳거니!” “지당한 줄로 아뢰오~” 그러지 않았지만
“허허, 그 참...” {‘쩝!’이 아니고 꽤 괜찮다는 뜻. 말 잘 해~}
시인의 산문집.
산문 좀 쓴다는 사람이 시도 잘 쓰지는 않겠지만
시인은 산문이라도 잘 쓸 것 같다.
시는 함축성, 산문은 명료성이 뼈대.
그러니 아름다운 말로 풀이까지 제대로 하면 잘 쓴 글이겠네.
아무개가 쓴 글은 다 좋더라?
그런 건 아니지만, 문태준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정호승? 착하잖아.
글이 착해야 될 건 아니라도, 착한 글 쓰는 사람은 착하더라고.
하하 문태준, 어렸을 적 얼굴은 어땠을까? 장난질하면서도 웃지 않는 협시보살?
그렇게 자라 지금은 서울로 온 운주사 와불일세.
글이, 다른 글들도 그렇지만, <느림보 마음>에 모은 글들은 고승의 법문보다 낫더라.
배코 친 적 없으나 법랍(法臘)이 쌓인 노승 같아.
정호승 글은 신부의 강론 같은데, 교회력(敎會曆)에 따라 만국공통 판박이로 하는 것 같지 않아 좋다.
도덕적이라고? 그게 어떻다고?
도덕 = 고리타분, 그런 공식 없거든.
처음부터 가상의 벗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쓴 글이니까.
아 듣기 싫어, ‘힐링’이라는 말.
막힌 데 뚫어주고, 닫힌 데 열어주고, 맺힌 데 풀어주는 일
그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분 정도라면 모를까 아무나 할 일 아닌데
웬 돌팔이가 그리 많은지 저마다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들더라니까.
‘힐링’이니 그런 딱지로 호객하지 않았으나
읽으면서 “그래 그도 그렇겠다”라는 끄덕임 더러, 그러다가 맑아지는 마음
그러면 괜찮은 책이지, 말하자면 자가치유이네.
치유는 누가 해주는 게 아니고 제풀에 억울함이 풀려 시원한 큰 숨 내뱉는 것이겠다.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지나갔구나.
먹자, 먹고 기운 내자.
서정(抒情)은 타오름? 아니고, 꽃잎 하롱하롱? 아니고
썩은 잎들 위에 고인 맑은 물 같은 것.
천사표 이해인? 그렇게까지 아니라도 돼.
종교를 가진 게 좋은데, 그렇다고 종교적이어야 할 것은 아니고
두 서정 시인이 쓴 산문 모음, 그쯤이면
몇 주, 몇 개월 걸쳐 베스트셀러에 오른 힐링문학{? 참 내...} 잡서들보다 훨!!!일세.
문태준 지음, <느림보 마음>
마음의 숲, 2012년 9월 17일 간 (개정판)
정호승 지음,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비채, 2013년 1월16일 간
* 뱀발: “서면에 의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없이...” 어쩌구 해대서 내용 인용이나 소개 안 해요.
Franz Liszt, 14 Schubert Lieder (Oxana Yablonskaya,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