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서 보기만 하고

(무명초 추모식전에서 영정을 사용하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가 있었습니다.
조객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이름 없는 꽃

 

예전에는 그냥 ‘들국화’라고 그랬다.
그게...  들국화라는 이름의 꽃은 없다.
그렇지만...  가을에 피는 꽃은, 정원이 아니라 산과 들에서 피는 모든 꽃은,
말하자면, 들국화이다.

 

들풀이지만,
이름을 알면 이름대로 불러주는 게 좋다.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준 적이 없는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안준철, ‘들풀’)

 

그 들국화란 것이 적어도 감국, 쑥부쟁이, 구절초, 개미취, 등의 다른 이름들을 가진 것으로,
또 쑥부쟁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고 저희들끼리라도
“나보다 더 예쁜 것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식으로 나뉜다는 것쯤
알 만한 이들은 안다.

 

언제 정말 그가 ‘무식해서’  무안하게 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러지 않았던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구나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다!
         (안도현, ‘무식한 놈’)


그래, 참 많이 알더라. 
웬만한 들풀, 꽃, 나무들, 척 보고 알더라.
이름, 그리고 용도를.


이제 난 무식한 놈.
“이름 모를 꽃들이 나를 반기더라” 식으로 말하는 뒤떨어진 사람.

 

그렇지만, 우리는 이름은 몰라도...
아꼈다.
꺾지 못했다.
이름을 모르기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붙인 이름이기에 사랑했고.

 


용도

 

그렇게 잘 알면?
써먹을 데가 있다는 거지.

 

모든 풀이 약초라고 치자.
열매, 잎, 뿌리, 껍질, 꽃, 씨, 수액...
씨가 마르겠네?
모든 들꽃이 볼 만하다고 치자.
들에는 꽃이 없어지겠네?
그러면 지란(芝蘭)뿐만 아니고
웬만큼 반반한 건 모조리 멸종되겠네?

 

좀 내버려둘 수 없니?
거기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냥 그대로.

 

알면 인사하면 되지,
뜯어먹고 잡아먹어야 쓰겠니?

 


격조 높은 즐김

 

백목련 봉오리를 튀겨 먹는다고.

 

그런 걸 먹을 데쯤 들릴 이들이라면
(제공하는 이는 더욱이)
품위 있는 문화귀족들이겠네.

 

개고기...

 

연꽃차?

 

나도 한 번 시음했으면 좋겠다.
꿈속에 그려봤다,
그런 다회(茶會)에 촌놈도 끼어보는 호사를.

 

그게 그렇지 않을까?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그래야 ‘다신계(茶信契)’가 생기지 않겠냐는.

 

목련도, 연화도 몇 일이나 가겠어,
‘십일홍(十日紅)’도 아니고 사흘이나 버틸는지.
어차피 갈 것이니까,
세상에 태어나 꽃피운 목적을 이루어주자?
어떻게?

 

따서, 싸서, 냉동보관으로 이어지는 수법을
사진 곁들인 친절한 설명으로 제시하는 동안,
왜 그런 말들이 떠올랐을까?
체포, 구금, 살해, 암장, 식인...

 

좀 떨어져서 피잖아,
일부러 진흙탕에 들어가지 않으면 딸 수 없는 곳에서.

들어가서 꺾어야 한단 말이지?
뜻이 있으면 길이 있으니까...

 


얼른 떠나자

 

동녀(童女)를 짓밟으면 불로(不老)한다?
될 법한 얘기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그래서 되겠냐고?

 

“아, 예쁘다...” 하고서,
대못으로 명치를 찔리는 아픔의 예감이 다가오면,
자리를 떠나야겠지.

 

꽃.
그냥 지나치자니,
나만 바보 같고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더 있으면 저지를 것 같다고?
그럼 그만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