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2)
Variations on a theme of ‘Wild Chrysanthemum’
진실
초롱꽃 목 국화 과에 속하는 야생초들이 한, 둘이겠는가.
그냥 ‘들국화’로 불러달라고. 밝힐 것도 없고.
사실
가을꽃은 모두 들국화인 셈인데,
감국--황국--은 주로 산에 피지만 굳이 산국이라 할 것도 없고,
구절초, 그건 보통 흰 색, 더러 붉은빛이 스미기도 하지만.
예전에 아주머니들이 마가렛이라고 부르던 샤스타 데이지의 축소판 같은데, 앙증맞고 귀엽지.
우리 애들 그만 하면 됐으니, 에델바이스 좋다고 할 것 아니다.
개미취는 청자색, 꽃잎이 가늘다.
개미취라 해도 하나가 아니고, “내 모습 이대로”로 나올 이들이 여럿.
쑥부쟁이. 그것도 까실쑥부쟁이 등 구별해달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더러 있다.
‘연보라’라는 색.
보라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맛있는 커피.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건? 맛없는 커피.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건? 멋있는 사람.
세상에서 제일 멋없는 건? 멋없는 사람.
세상에서 제일 고상한 색? 괜찮은 보라.
세상에서 제일 징그러운 색? 언짢은 보라.
쑥부쟁이 색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지만,
촌에 살아도 촌스럽지 않고
도시를 떠난 적이 없는데 야만스럽지 않은 사람의 후광 같은 빛깔.
다시 진실로
쑥부쟁이를 구절초라 하면, 사실에 어긋나니까 틀렸고,
쑥부쟁이를 들국화라고 그러면, “흠... 글쎄~”이지만 진실 안에 머물고.
그러니 그냥 들국화로.
벌초하지 않는 전인권 때문에
들국화 이미지에 혼동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만한 게 쉽지 않음은 진실.
비탈진 들녘 언덕에 니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노천명, ‘들국화)
들판에 혼자 두기가 안됐더라도, 내버려둬라.
갈 꽃보다 보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친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아름 고히 안고 돌아와
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
거기서 맘대로 자라라 빌었더니
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지고
웃음 걷운 네 얼굴은 스그러져
빛나던 모양은 한잎 두잎 병들어 갔다(...)
천상 시인? 아니, 귀여운 천치 아저씨.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ᅳ
(천상병, ‘들국화’)
7월부터 피긴 하지만,
정작 “나 여기 선 줄 모르고...”를 보여주는 건 한로(寒露)와 상강(霜降) 사이.
억새풀들이 그걸 알아줬으면... 뭘?
지네들도 한 철인데,
있는 동안 “그대 있기에 내가 있고”라고 한번이라도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그래서...
다 떠난다.
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스러진다.
만나면 사랑하기.
있는 동안 아껴주기.
가도 아주 가지 않음을 믿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