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콤플렉스
거기 혼자 있어도 좋더라
백석의 ‘고방’을 옮겨 적는다.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 산적을 꿰었다
손자 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 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짚신이 둑둑히 걸리어도 있었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 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나도 쌀독 뒤, 뒤란의 장독대, 나무광의 풀더미 위에 있기도 했다.
한번은 누워있는 내 옆에서 암탉이 알을 낳고('놓고'가 더 그럴 듯) “꼬꼬댁 꼬꼬”라고 요란 떨었다.
Come Home, It's Suppertime.
어릴 적 얘기.
숨바꼭질하다가 술래가 “못 찾겠다 따까리~”라고 선언하면, 의기양양하게 나갈 심산이었다.
나는 독 장사하는 이의 바깥마당에 내다놓은 독 속에 숨어 있었다.
아이들이 어찌 찾겠는가, 어두워지고 제 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자 뿔뿔이 흩어졌다.
짜식들, 그냥 가면 어떡해?
나는 독이 흔들려서 혼자서는 나갈 수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늘어선 독들이 도미노 넘어지듯 하여 난리가 날 테고.
“저녁 다 됐는데 얘가 어딜 갔나”하며 찾으시던 어머니에게 발견되어,
나는 ‘독’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집에 가고 싶어도 제 발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아버지는 먼저 searchlight를 비치시고,
그래도 있는 곳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친히 몸을 굽히시어 건져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