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선님 없소?
1 졸병 없는 교회, 발 씻겨줄 하인 없음.
어느 작은 교회의 몇 안 되는 교인들이 모조리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이다.
“인디언은 얼마 안 되는데 기병대는 엄청 많다”라는 말도 있지만,
전교인의 항존직 만들기를 ‘제자화’로 여기는 곳도 없지 않다.
글쎄, 그 ‘호칭’이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미스터 김!” 할 수도 없고.
언젠가 식당에 갔더니, 종업원이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사장인 줄 어떻게 알고?” 그랬더니, “아, 뭐, 다 사장님 아닌가요?”라는 대답이다.
남자는 무조건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데도 있는데,
그거야 형과 아우가 함께 있을 때 둘을 같이 부르는 말 아닌가?
자매라는 말도 그럴 것이고.
또, 어머니 벌 되는 분에게 ‘자매님’? 안될 말.
해서, 선님, 언님으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난 그런 게 싫어요, 그냥 집사님이 좋겠어.”라는 분들의 기분도 이해하지만,
한번 듣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님’이야 올림의 뜻으로 붙여주는 말,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주님’을 한자로 쓴다고 ‘主任’이라고 해서는 안될 일.
그거야 주임이지, 배차주임처럼, 어디 ‘주님’이겠는가?
굳이 ‘주임’으로 발음하겠다면, ‘주-임’,
즉 ‘主를 임’--주님을 제 머리 위에 모시고 어디든지 가오리다--의 뜻으로 그러기 바란다.
거룩한 직분을 사람들 비위 맞추기 위해서 남발, 남용하는 경향이 있기에 딴죽걸어봤지만,
비단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그런 호칭을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2 선
‘선’은 ‘선비’로부터 나온 말인데, 先도, 善도, 仙도, 鮮도 아닌,
순 우리말--몽고어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지만--이다.
(‘조선’이라는 말도 나중에 한자로 朝鮮이라 음역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사계의 권위 아님.)
‘선비’라면,
(1) 학식은 있되 벼슬하지 않은 사람,
(2) (그러나) 몸에 재능을 가지고 나라에 쓰임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
(3) 학덕을 갖춘 이(를 예스럽게 말하자면),
(4) 어질고 순한 사람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는 유교적 엘리트 인간형을 지칭하지만, (4)의 경우는 꼭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나는 봉건 계급적인 지칭으로의 ‘선비’와 구분하는 뜻으로, 그냥 ‘선’,
거기다가 존칭을 의미하는 접미사를 붙여 ‘선님’이라고 서로 불러주기를 제안한다.
그냥 ‘어질고 순한 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은사(gift)가 있으니, 기회가 닿으면 쓰임 받을 사람’이라는 의미도 보태졌다고 생각하자.
3 언
‘언님’은 일부에서 이미 사용한다.
일찍이 다석 유영모 선생이 여성 수도자에게 붙여주었다고 하며,
지금은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에서 사용한 이래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한자로 ‘선비 언(彦)’이라는 자도 있지만, 물론 한자는 아니고,
‘어진(仁)’의 뜻으로 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니, ‘언님’은 ‘어진 님’이라는 뜻이다.
(식당 종업원의 호칭이 아님.)
4 선님 언님 모여 살았으면
‘(똥)장군’보다는 ‘용사’라는 말이 더 낫게 들리지 않을까?
계급적 호칭에 마음 두지 말고, 선님, 언님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인격,
그리고 교회에서라면 믿음을 갖추면 될 것이다.
예전에 ‘선비’라면,
위대한 시대착오자, 주림을 견딜 줄 알고, 폼생폼사, 불러주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난장에 가보지 않아 돌아가는 소식도 모르는, 괜한 일에 고집 세우는,
그런 부류이었는데...
그래도 있어야 되겠다. 그립다.
마음씨는 선(善)하고, 선선하며,
맵시는 선드러지고(鮮妙, 鮮姸, 嬋娟),
선뜻 나설 줄 아는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아 눈에 선하다.
김선, 박선, 이선... 그런 이들 모여 살았으면.
“모여!” 그랬다. 없네.
집어등(集魚燈)도 아니고, 방향(芳香)도 없는 주제에 바랄 걸 바라야지.
후진 데 죽치고 있으면 눈에 띄겠냐고?
공구 선생은 천하를 두루 다니셨으나, 그저 그렇더라.
혼자 노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