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의 시를 읽다가
니네는 좋겠다
그래 나 고향 떠난 지 오래 됐어.
우남 할아버지가 독립운동 한다고 피해 있던 시절보다 더 길어졌지.
먹고살 길 없어 돌아가지 못한다만,
그만 약올리기 바란다.
멀리 떨어진 섬에 유채꽃 피었다는 소식으로부터 시작해서
꽃길 따라 물길 따라 선운사 동백하며 섬진강 매화하며
벚꽃 진달래 철쭉 수수꽃다리 줄줄이 주워섬기다가
요즘은 뭐 작약이 피고 지고 라며?
그래 조옿겠다 자알들 놀거라.
꽃 없다고 못살 것은 아니지만,
잊어버리지 않은 모국어를 잃은 채로 살기가 안된 거야.
니네는 좋겠다
잘 떠들고 살거라 이.
(망향의 푸념이니 좀 봐주라.)
피었다가 지더라
큰 꽃잎 흩어지는 건
무너진다고 해야 되겠지.
그럼 ‘우수수’가 아니고
‘와르르’이겠네.
그런데도 깨지를 않네.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고사(古寺) 1--
낙화라는 게 참 그래.
그 흔하게 돌아다니는 시구를 가져오기도 그렇지만.
그렇다는 게 뭐가 그렇다는 건지 애매하지만,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여 잘 자거라”도 좀 그렇더라.
다정도 병인 양하여
살면서 만나는 황당의 극치가 한두 가지이겠는가 마는,
‘이조년’을 두고 누가 그러더라.
“아무리 여권(女權) 부재의 시대라지만,
필자의 이름도 남기지 않고 그냥 ‘이조 여자’라고 그런 건 너무 했네요.”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은 여말(麗末) 네 왕을 섬긴 선비이다.
한때 낙향하여 ‘백화헌(百花軒)’을 짓고 노래하였는데,
백화헌이라고 백화를 피울 것 없고 그저 눈 속에 매화, 서리 내릴 때 국화면 됐다고 했다.
‘다정가’는 무드가 전혀 다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그냥 “좋다!”하면 될 것인데,
도심의 밤에서는 젖줄(the Milky Way)을 볼 수 없기에,
월백과 은한이 맞아떨어지는지 잠시 의심했다.
달밤에 산에 가서 확인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다 때가 있는데
퇴직금이 제법 되었나보다. 홀라당 털어 목욕탕을 지었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아주머니가 걱정했다.
아저씨가 하는 말, “두고 봅시다. 사람들에겐 다 때가 있는데...”
젊어서 지훈이 목월을 만나 놀던 짓, 지껄인 말들은 아름답게 보아준다.
우습지도 않은 것에 눈물 흘려도.
말 같지 않은 말에 불심(佛心)까지 들먹이며.
늙마에 사랑이라는 복병에 걸려들면 완전 망신살,
누가 좋게 봐주랴?
그땐 눈물도 꼴불견이라고.
설운 세상에 눈물 많음을
어이 자랑삼으리.
--기다림--
그래도 슬픈 건 슬픈 거니까.
눈물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승무(僧舞)--
그런 것 아니고,
누가 안 됐어서가 아니고,
내가 딱해서 그런 거야.
늦게 찾아온 손님을 거절하지 못해서였어.
이제 와서 무에냐고 물으신다면,
소름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꼭 창피해서만도 아냐.
싸르르 찌릿찌릿 슴벅슴벅이 된 것은,
다함 없는 감동이
그침 없는 진동이 되면,
그건 통쾌하지 않고
고통이 되는 줄
몰라서였지.
그래도
날 울게 내버려둘래?
하, 도라지꽃
애고 주절주절,
비 오기 전 개구리 소리네.
그만 해도 되겠다.
그게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된 얘기구나.
여긴 청산 백운(靑山 白雲)도 없고,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고풍 의상(古風衣裳)--
에이 뭐 그런 것도 없어.
그런데,
낮엔 뜨거워서 나가지 못하다가
저녁나절 되어 모기에 뜯기며
서툰 낫질을 하다보니,
하 여기 이런 게 있었구나...
뭐라 할 수 없는 파랑으로 나를 위로하는
도라지꽃이.
고운 임 먼 곳에 계시기
내 마음 애련하오나
먼 곳에나마 그리운 이 있어
내 마음 밝아라.
--기다림--
그럴 것 없다네.
저는 꽃 아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