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지도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는 고향이 ‘~천’인 분들이 많았다. 
선천, 용천, 희천, 박천...
게다가 내 천(川)자는 아니더라도 의주, 신의주까지 합치면, 다 압록강 근처에서 살던 분들.
한 세대 앞설 만큼 나이 드신 분들이었지만,
“애고, 이 따라지들, 내가 뭐 서북청년단 총무도 아니고...”라고 투덜거려도
“아, 피난민 수용소 소장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요.”로 받아주시기도 했다.
회식에 차려놓은 음식이라야 냉면이면 냉면, 족발이면 족발, 등
포인트 위주로 한 대야 쌓아놓고 어구어구 작작 먹어대는 약간 야만스러움이 보통이지,
밑반찬, 젓갈류 등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한 상을 대하는 적이 드물었다.

 

희천 분이셨는데... 
신심도 ‘별로’였지만, 나중에 장로까지 되셨다.
세례 받기 전에 문답을 하는데, “왜 교회에 나오냐?”고 했더니,
“정거장에 가면 고향 사투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라고 대답하셨다.

 

1981년인가, 작은 교회에서 세 분이나 이북에 다녀오자,
정보 영사--외교관 신분이지만, 보안사에서 파견 나온--의 사찰과 간섭으로
분위기가 나빠지고, 나는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장로님이 위독하시다 기에 한 번 찾아뵈었다.
힘없는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시는 말씀.
“급하게 떠나오느라고 뒷산에 패물을 묻어 둔 곳의 지도를 만들지 못했는데,
내가 가보면 찾을 수 있겠지만, 애들에게 말로 일러준다고...
‘갸들이 어데 찾기나 하갔어요?’”

 

                                              

어, 이 황당...
월남한 사람 치고 고향집에 금송아지 놔두고 떠났다고 그러지 않는 사람 없다지만,
그때 상당한 패물이 있었다 치고,
그게 뭐 요즘 세상에 대단한 시세일 것 같지도 않고...
아니, 장로 아냐?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해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銅綠)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는 말씀이 따랐다.

 

얼마 후 돌아가셨다고.

 

나이 이만큼 되어 돌아보니...
‘교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고,
요셉의 해골을 들고 고토(故土)로 돌아가던 이스라엘 자손처럼,
“통일이 되어 고향에 가실 수 있게 되면,
아드님이 그렇게 챙기는가 제가 꼭 확인하겠습니다.”라고 했어야 싶은.

 

뭐 나라도 그런데...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지만,
이제 가면 묻힐 데도 없을 것이고,
티끌이 어디를 날든지 다를 게 뭔가.

 

아, 그 보물...
달래 보물이 아니고,
‘거기에 마음을 둘 만한 것’이라 보물일 것이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 21).

 

그게...
젊어서는 눈밝다는 소리 들었는데,
이제는 지도를 손에 들었어도
잘 보이지 않는구나.    

 

근처까지는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