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세상 지나가기(4)
누가 물었다.
--‘이풍지다’가 무슨 뜻이에요?
--어디서 본 말인데?
--왜 있잖아요?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라고.
--아, 이 풍진 세상 말이지? 풍진은 ‘바람에 날리는 티끌’이란 뜻인데,
이 풍진 세상이라 하면, ‘우리가 사는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되겠네.
내가 뭐냐? ‘풍진객(風塵客)’이지. 속세의 나그네라고.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린 ‘보리 타작 노래(打麥行)’이 이렇게 끝난다.
“何苦去作風塵客(하고거작풍진객).”
좀 보태서 “뭐 하러 벼슬길에 헤매며 그 고생했는지”라고 옮기더라 마는.
갈 데가 있어서도 아니고, 아는 길도 아니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들짐승이 아무 데서나 싸지르듯 김삿갓이 내뱉은 노래들 중에
마지막 시로 알려진 탄식은 이렇게 끝난다.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얼마나 긴 세월 길가에서 헤매야 하는가.”
그 동안? “매기(Maggie) 머리는 백발이 다 되었네.”
걔만 아니고, 다 그래.
이백의 권주가(‘將進酒’)에 나오지?
“朝如靑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
“아침결에 푸른 실같던 머리카락이 저문 날에 눈꽃으로.”
그거 뭐 별 볼 일 없는 사람만이 아니고, 子자 붙는 어른들도 그렇게 탄식하던 걸.
“日月逝矣(일월서의)요 歲不我延(세불아연)이니 嗚呼老矣(오호노의)라.”
“是誰之愆(시수지건)고?”(朱子文集大全)
그게 뭐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된 거라니까.
뜬세상 ‘건너가기’가 아니라 ‘지나가기’라고 그랬지?
건너뛸 수 없고, 발을 적셔야 하던 걸.
“조심 조심 징검다리 건너듯”이 아니고,
저벅저벅.
그래도,
“이미 버린 몸 가꾸어 무엇?”하며
일부러 진땅 골라 밟을 것 없고,
마른 땅 있거든 짚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