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풀

 

 

풀은 풀

흔한 만큼 하찮은 것

 

잘 견디니까 살아남았겠지만

장하다는 격려는커녕 관심 끌지도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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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民草)라는 말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

강인한 생명력이니 그런 뜻으로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많다고 해도 밟으면 깔리지 어쩔 거야”로 깔보는 말 아니겠어?

 

제 손으로 자기들을 섬길 사람을 뽑는다는 민주주의 선거

두 못된 놈들 중에 어떤 편이 덜 나쁠까로 고른 후에는 번번이 후회하면서도

그렇게 당해도 땅을 지키는 풀, 풀뿌리들.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 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민병도,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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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꽃철이지만

그 꽃 달리거나 피어내는 것은 푸나무.

나무는 그나마 우뚝 솟아 해 묵으며 뽀대 나는 틀거지로 우러러보게 되지만

풀은 한여름 자라다가 마르고, 더러 한 해 더 살고는 형체가 없어지고 마는데

꽃 보며 잘났다 할 게 아니고 풀 보며 “잘 키우셨습니다” 해야 할 거라.

 

에이 뭐야?

풀!

 

  아무도 너에게

  가문 날 물을 주거나 거름 주지 않아도

  비바람 부는 날 막대기 하나 세워주지 않아도

  눈 내리는 날 볏짚조차 덮어주지 않아도

  아무도 너에게

  따뜻한 손길 내밀지 않아도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아도

 

  너는 봄이면 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잎이 자랐다

  가을이면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날 줄 알았다

 

  추운 겨울 내내, 스스로 네 몸을 썩혀서

  또 다른 봄이 오면 싹을 틔울 줄 알았다

  아무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너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사랑이, 그 큰 사랑이

  험한 세상을 버티는 힘이 되었다

 

   -서정홍, ‘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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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히고 베이고 뽑혀도 항거하지 않는 건 힘이 없어서이지 사랑해서가 아니지만

무관심해도 상관하지 않는 것은 저 못난 줄 알아서이지 외사랑 때문이 아니지만

들불로 태워버리고 푸새다듬으로 끝없이 제거해도 깜빡 손 놓으면 풀벌 되고 마는

그렇게 무저항으로 이길 때까지 버티는 힘은 지독한 사랑이니라.

 

두 번이나 남편 곁을 떠났던 부인이 한참 후에 “그래도 내 사랑은 당신뿐입니다”

“가신지 한참 되었지만 아직도 곁에 계십니다” 뭐 그런 책을 냈다는데

아 그분의 풀, 그 지독한 “풀이 눕는다”는 옮기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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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봄풀더러 지독하다고 그럴 건 아니지.

그 여리고 나긋하고 보드레하고 보유스름한 spring green(軟豆)

심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덜 채워진 것 같아 쓰다듬고 보듬어주고 싶은 것.

핥기나 할까 씹을 건 아닌데

그래도 나물 해 먹겠다고 캐고 뜯더라.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도곤 맛이 이셰” 해가면서.

{그게 먹을 게 없을 때 하던 얘기지, 염치도 없네.}

 

한 상 오른 반찬이라는 게 명이나물, 개두릅, 머위, 참나물, 취나물, 돌나물, 돌미나리

더러는 생것 쌈으로 들고 더러는 데쳐 소금이나 간장 정도 쳐서 들고

말렸거나 냉장고에 챙겨두었던 것은 묵나물로, 햇것은 생나물로

음, 보자

달래, 냉이, 꽃다지, 그건 노랫말에도 있는 기본, 민들레, 고들빼기, 지칭개, 뽀리뱅이, 곤드레, 고비,

나비나물, 부지깽이나물, 우산나물, 곰취, 도둑취, 잔대, 삽주, 풀솜대, 꿀꽃, 다래순, 마타리, 원추리, 가시오가피.

{이상 ‘무순’이라고 밝히자. 괜히 서열로 알고 화내는 애들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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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짐거리던 비 그쳤으나 잠포록한 날 가끔 바람까지 찾아들어

Bradford Pear(꽃배나무) 꽃잎들이 꽃눈깨비로 날린다.

{올된 놈들 먼저 가더라고. 그러면 늦게 온 애들이 “이제는 내 세상” 그러지.

한 동네에서 자란 나무들이, 아니 한 나무에서도 가지에 따라 먼저 혹은 나중에 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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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배꽃은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정서를 모르는가봐.

그래도 젖고서야 설리, 너도 그렁그렁이구나.

 

 

 

가지 쳐다보다가 바닥 내려다보며 걷는 길가에 죽은 잔디 대신 광대나물이 지천이다.

그런데 그걸 왜 코딱지꽃이라고 부르는가?

우스운 것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꽃을 두고 개xx이니 쥐xx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지 모르겠네.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 내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김명수, ‘우리나라 꽃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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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풀! 하면 얼른 생각나는 구절이 있지.

에고, 그 “少年易老學難成”으로 시작하는 勸學歌 말인데

“연못가 봄풀이 아직 꿈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섬돌 앞 오동잎은 이미 가을을 알리는구나”라는.

봄풀은 뭘 모르는가봐.

덧없는, 부질없는, 하염없는 봄풀.

봄풀 같은 나는 경고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촌음을 아껴 쓰지 않았네.

 

에이, 봄꿈 꾸는 봄풀에게 겨울이 닥치리라고-momento mori- 상기시킬 필요 없다.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각자에게 여름과 가을이 있으니까.

결국 ‘Carpe diem!’으로 돌아가는 얘기?

 

함석헌 어른 그러셨더라.

삶이 봄풀에 꿈이라도

그 끝에 맑은 구슬이 맺히느니라

지나가는 나비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영원의 향기 마시기를 잊지 마라

-‘마음에 부치는 노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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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영화 ‘초원의 빛’인가에서 맹한 여학생 Natalie Wood가 벌로 읽던

William Wordsworth의 시 ‘Splendor in the Grass’ 하며...

 

 

 

Splendor In the Grass (Pink Martini)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