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란타
아카시아의 추억
고학이라 할 건 없지만, 앙골라를 키운 적이 있다.
그때에는 두부공장에서 비지를 얻어오는 것과 아카시아 잎을 훑는 것이 일과였다.
허구한 날 가시에 찔리고 긁혔는데, 꽃이 한창일 때는 향기로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징집되었고...
1967년 5월 어느 날 야외 교장으로 행군하던 중에,
길 양편에 만발한 아카시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대열에서 이탈하여 꽃을 한 움큼 따들었다.
그냥 지나갔겠는가? 걸려서 죽도록 맞았다.
빗발치듯 떨어지는 발길질에 쓰러져 구르다보니
논에 쳐박히게 되었다.
지급품(작업복)을 더럽힌 것은 대한민국 재산을 훼손한 죄에 해당하는 고로,
0.5초 내에 벌거벗고 빨아 말리지 않으면 영창에 집어넣겠다고.
중대 병력 앞에서 혼자만 알몸으로 몇 시간 서 있으라는 기합이다.
저항했다. 그래서? 개머리판으로 맞고, 기절했다.
그리고? 살아났다. 병신은 면했고.
나의 아카시아 추억은 그 꿀이나 향내 같지는 않다.
등나무 테라스 있는 집
쉰이 지나 집을 하나 장만하게 되었다. (집 값의 팔 할은 삼십 년 상환으로...)
집을 살 때에 뭘 봐야 하는지 사전 지식도 없었고,
그저 담장이 등나무로 덮여있기에 “아, 이거면 됐다.”하고 덜컥 계약했다.
그 후 4년 동안 꽃을 보지 못하고 울타리만 쓰러트렸기에 베어버렸다.
소년시절의 꿈인 ‘등나무 테라스 있는 집’은 그렇게 물 건너갔다.
보랏빛 꿈? 내 뜰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라색 꽃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빨강과 파랑이 어떤 비율로 섞였는가에 따라 딱 ‘보라’라 할 수는 없더라도,
장미, 큰꽃으아리(clematis), 피튜니아(petunia), 도라지꽃, 나팔꽃 같은 것들이 있다.
수국? 그건 하양, 옅은 파랑, 분홍, 자주 사이를 오락가락하기도.
그래도 그것들이 어디 등꽃(wisteria) 같던가?
그걸 보자면? LA에 간다.
자카란타
미국에서 원예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오레곤이나 워싱턴 주에 살면 좋을 것이다.
겨울에까지 마당에서 꽃을 보기를 원한다면, 남가주(Southern California)까지 내려와야 한다.
나성(Los Angeles)은 한국이 가깝고 한국 음식이 싸서가 아니라,
‘꽃’ 때문에, 그리고 한 시간 이내 거리에 해변, 산, 사막이 있어서 좋다.
등나무 꽃을 놓쳤다면?
그래도 괜찮다. 자카란타(jakaranta, jacaranda)가 있거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자카란타는 두 달 가까이 피어있다.
그게 부자 동네가 아니라 허름한 집들의 빈터나 대로변에 마구 자라는 하치 가로수라서
오월, 유월 동안은 LA 근처 어디서라도 그 쏟아지는 보랏빛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LA 주민의 2/3 이상은 그 나무의 이름을 모른다.)
자카란타 나무 밑에는 보통 옅은 파랑--더러 하얀 것도 섞여--의 아프리카 나리(agapanthus) 꽃이 피어있어
잘 어울린다.
하나라도 확실하면
나무도 잘 생기고, 꽃도 볼 만하고, 먹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도 많다.
그런 나무를 심으면,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이 쑤시는 식의 여러 이득이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자카란타 나무는?
생긴 걸로 치자면, 정말 볼품 없다. 수질이 물러서 부러지거나 쓰러지기도 잘 한다.
울안에 심기는 그렇다.
가시는 없지만 아카시아 나무 같이 생겼는데, 좀더 못났다.
(수목 사전까지 찾아볼 건 없지만, 같은 과가 아닐까 싶다.)
향기로는 아카시아 꽃에 준한다고 할까, 그리고 꽃 색깔은?
끝내주는 보라.
그거면 된 거 아냐? 하나라도 확실하다면?
타격이 형편없으니 투수가 될 수 없다? 그건 말이 안 되지.
사람에게서 괜찮은 점을 발견하면 ‘괜찮은 사람’으로 치자고.
그가 갖추지 못한 것들을 들먹이며 “형편없는...”으로 평가하진 말자고.
* 아래 사진은 "이쯤은 돼야..."라는 뜻으로 참나무님이 제공하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