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사랑
"그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Variation on a theme of Puccini's opera ‘Turandot’--
Nessun Dorma
처음에는 “왕자는 잠 못 이루고”라고 그랬다.
다음에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고 그랬다.
뭐 어려운 말이라고... 이태리어 공부한 사람들이 한둘도 아닐텐데.
“누가 잘 수 있으랴(아무도 잠 못 이루고)” 혹은 “아무도 자면 안 돼”로 옮길 수 있겠다.
포고령이 없었다면, 발뻗고 자겠는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아, 그런 제목의 영화(p. 1958)가 있었나보다.
원작자 레마르크가 폴만 교수로 얼굴을 비치고, 존 개빈이 힘없는 그래버 상병으로 나온.
힘없는? 나처럼... 누구는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살아남는 게 최곤데, 그만 폼 잡다가... 뭐, 얘깃거리를 만들자니까...]
팜므 파탈
그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는 말...
멋질 것도 없고 별 것 아니라니까.
‘요부(妖婦)’라고 옮기더라 마는, 그런가?
한 남자뿐 아니고 여럿이,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아니고 특별한 재능과 영감을 지닌 이들,
그리고 포기하기에 쉽지 않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말하자면, “사랑을 위하여 왕위도 버리고” 식으로...)
어라, 한 여자에게 미쳤다면,
흠, 그 여자에게 뭔가 있지 않고서야...
그게 꼭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는 아니었더라도.
한 사람만 골라보자.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e).
길게 얘기할 것 없고,
상대인물열전--니체, 릴케, 프로이트, 바그너...
(높은 봉우리만 골랐지, 오름이 얼마나 많았다고.)
43년 간 법적 남편이었던 안드레아스가 별 볼 일 없는 동안
그녀는 천재, 명인들 사이를 끊임없이 옮겨 다녔는데,
그러면서도 매혹과 순정 이미지의 ‘천사표 아줌마’였다는 황당함.
누구를 파멸시킨 게 아니고,
명작 생성의 내공을 주입했다니까...
‘두이노 비가’ 같은.
그러니, 천재들이 자라도록 품어준 자궁에 대하여
문화 창달(暢達)의 공로를 인정하여 최고훈장(Legion d'honneur)을!
투란도트(Turandot)
그러면 투란도트 공주는?
피 흘림(流血)을 즐겼다.
흡혈귀? 아니고.
성질이 더러워서? 아니고.
그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마법, 주술에 걸렸다고 할까,
아무튼 제 아비(황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물을 수 없다?
그러기에는 무고한 생명의 희생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사라진 이들은
목숨을 건 내기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던 것이다.
(“제 욕심에 눈이 어두워...”라는 쪽으로 희생자를 비난하는 얘기는 아니고.)
예쁘기야 예뻤겠지.
천하제일미인이 아니고서야 마음이 움직였겠는가.
그림 한 점이라도 남아있지 않으니 용모 파지가 어려운데,
아, 그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로 미루어 보자고?
그게 좀...
노래하는 이들은 몸이, 그리고 그 정도 배역을 맡자면 나이도...
(그러니 사진 한 장 못 올리는 이유는 알 만 하겠고...
투란도트의 비신화화를 도모하는 뜻으로 실려도 괜찮겠지만,
왜 가부키 인형 같은 화장을 하여 괴물처럼 만들어야 하는지, 내 원...)
(속옷 상표가 웬 Turandot?)
내기 - 사랑 아니면 죽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가 아니고.)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 모를 소리.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하기?
알만한 얘기지만, 지금 감동 예화 뽑자는 건 아니니까.
죽어도 좋아? (조선 식이라 팍 들어온다만...)
그래도 그렇지, 사랑하자면 살아야지.
죽은 다음에야 사랑할 수 없는 거니까.
하긴 ‘죽음으로써 사랑하기’라는 선택도 있다.
극중 류(Liu)는 사회제도, 그리고 극의 구성상 맺어질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다면 고백할 것도 없는 숨겨진 사랑인데
(“Tanto amore segreto, e inconfessato”),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고통을 달게 여기며 제물로 바친다
(“Ah! Come offerta suprema del mio amore!").
사랑이 여의치 않으면?
(보통은 그렇더라.)
같이 죽기도 하더라고.
죽음의 독배(death-poison)를 최고의 사랑의 묘약(love-potion)으로 알고 마시더라.
이기면 사랑을 얻고, 지면 목숨을 내어준다?
무슨 내기가 그러냐?
그건 지도록 짜여진 사기 극(詐欺 劇)이라고.
피를 더 요구하는.
이기고 지는 건가?
수수께끼는 세 개이고, 생명은 하나인데,
칼라프(Calaf) 왕자는 수수께끼를 모두 풀고 생명을 얻었다.
아니지, 처음부터 생명은 제 것이었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가가 문제이었는데,
칼라프는 내기에서 이겼다.
그러니까, 이제 칼라프는 투란도트를 얻게 된 것인데...
한다는 소리 좀 봐.
“절대로 나는 당신 것이 안될 테니까... 아무도 나를 소유할 수 없어.”
목숨을 (한 쪽에서만) 내걸었던 승부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니,
그런 X 같은 경우가...
황당함이 좀 가셨다면, 내 하나 물어볼게.
사랑은 이기고 짐에 따라 얻을 수도 있고 놓치기도 하는 전리품인지?
(그리고, 사랑은 상급인지, 아니면 과정인지?)
지X 같은 공주가 거부하기는 했지만,
법적으로 칼라프는 투란도트를 아내로 맞을 수 있었다.
실은 칼라프가 사절한 것이었다.
비록 ‘승리’(“Vincero!”)나 ‘소유’(“Ti voglio mia!”)라는 개념을 사용하긴 했지만,
칼라프는 강제구인이라는 법 집행이 의미 없음을 알았다.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다음에야...
어쩔 수 없는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랑은 없는 거지.
내 이름을 알아맞힌다면
승복하지 않는 공주에게 왕자가 제안한다.
동틀 때까지 그의 이름을 알아내 보라고.
알아맞히면 (공주가 내기의 법적 구속력에서 면제될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을 수도 있다고.
투란도트가 절대로 제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리라는 확신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한 것일까?
아니, 칼라프는 공주가 그녀의 입으로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죽어도 좋아.
그래서 왕자는 그의 이름을 스스로 알려준다.
[투란도트의 대본 작가--혹은 모체가 되었던 ‘Turandotte’의 작가 Carlo Gozzi--가
거기까지생각한 것은 아니겠지만,
고대세계에서 낯선 사람의 이름을 알아내서 부른다는 것은
그렇게 부르는 자가 그를 지배하게 됨을 의미했다.]
한국인들--적어도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라는 김춘수의 ‘꽃’을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무엇이니? 나는 그에게 무엇일까?
확실한 의미? 변하지 않는 사랑?
(그게 아니라면, 계약의 구속력도 소용없는 것이라고.)
그렇다고 ‘목숨’을 걸 것까지야...
두려울 건 없다.
그러나, 왕자는 말한다. “당신이 이겼소.”
때가 되어 그들은 황제(그리고 사람들) 앞에 섰다.
칼라프를 똑바로 보며 투란도트는 말한다.
“그의 이름은... 사랑이에요!”
사족
(사족을 허락하더라도 몸통보다 커져서는 안 될 텐데...)
이런 류로는 드물게, 오페라 ‘투란도트’는 happy-ending이다.
사랑의 승리라고 할까.
뭐 다 승리이지만, ‘상처뿐인 영광’이 아니라 ‘달콤한 승리’말야.
뭐 하나 되자고 하면, 여러 가지가 되는 쪽으로 어우러지더라고.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불러오는 것도 아니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엉뚱한 소쩍새도 동원되는 것이고.
죽음 공주, 얼음 공주에게 입맞춤을 알게 하고, 눈물을 주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돌려준 것은
왕자의 순애(純愛)였지만,
(그렇다고 ‘작전’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이전에 류의 순애(殉愛)가 먼저 있었다.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바치는 류에게 투란도트가 물었다.
“무엇이 네 마음에 그런 용기를 주느냐?”
“공주여,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